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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08. 2024

시아버지와 며느리, 그리고 제사

뭣이 중헌디


며칠 후면 할아버지 제사입니다. 아버지는 명절이나 제사를 거른 적 없습니다. 조선시대 선비와 같습니다. 제사도 반드시 밤 11시 넘어야 지냅니다. 그 시간이 되어야 귀신이 온다 하네요. 잘은 모르지만, 아버지가 그렇다 하니 그런 줄 아는 겁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터라 저도 부지런히 제사를 모셨지요. 


아내가 다림질을 마치고 정리하다가 다리미판을 발등에 떨어뜨렸습니다. 순간적인 통증에 주저앉아 인상을 썼고, 발등은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가운데 발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해야 한다네요. 


절뚝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힘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제사가 코앞인데 어쩌지." 사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이번 제사를 제대로 지낼 상황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저녁 식사하는 자리에서 아버지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제사는 지내야지."

아버지의 한 마디에 집안 공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습니다. 아내는 서운한 마음 감추지 못해 방에 들어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도 속이 상할 대로 상했고, 어머니도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지었지요. 


돌아가신 조상님도 중요하지만, 시집살이 하면서 시부모 봉양하는 며느리 발가락 뼈가 부러졌다는데 "그래도"라니. 아무리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입니다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내는 기어이 돌아가신 장인 장모 이야기를 꺼내고야 말았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난 이 집 식구가 아닌가. 당신 뼈가 부러졌어 봐. 아마 아버님 어머님 난리 났을 걸. 나 진짜 너무 서럽고 속상해. 


이번 일 뿐만 아닙니다. 자식이 부모 모시고 함께 살면, 부모가 자식 품어 같이 살면, 좋은 점도 있지만 부딪히는 일이 훨씬 많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아버지와 며느리, 저와 아내, 저와 어머니, 저와 아버지. 바람 잘 날이 없지요. 


게다가 저는, 모르는 사람이 옆에서 싸워도 마음이 불편한 성격입니다. 하물며 가족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데 불행한 마음 오죽하겠습니까. 그럼에도 저는, 그 누구에게도 속마음 있는 그대로 터트릴 수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 때문에 일어난 상황이니까요. 


서울 살다가 사업 실패 후 대구로 내려왔습니다. 제가 망해서 부모님한테 얹혀 살게 된 거죠. 좁은 집에 두 식구 합해지니, 서로 불편한 게 한두 가지 아니었습니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나름 괜찮아진 점도 있지만, 갈수록 골이 깊어지는 일도 허다합니다. 


결혼 직후부터 제가 팔을 걷어붙이고 제사를 도왔습니다. 20년 지났습니다. 씩씩하게 돕긴 하지만, 명절 포함해서 일 년에 여섯 번 제사를 지내는데 솔직히 너무 힘듭니다. 


평소 먹지도 않는 음식을 지지고 볶아야 하고, 일일이 상을 차려야 하며, 제사 끝난 후에 음복 챙기고, 그 많은 음식 한 동안 다 보관하며 처리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선비(?)라서 그런 거 모릅니다. 가스렌지 만질 줄도 모르니까 말 다했지요. 그러면서도 제사는 반드시 지내야 한다는 고집만 부립니다. 


정말로 조상님이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면, 손주 며느리 발가락이 부러졌는데 제사 차리라고 하실까요? 그런 조상이라면 없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렸을 적 못살았고, 할아버지 생전에 무엇 하나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돌아셨는데요. 그때 아버지가 장지에서 펑펑 우시는 걸 보았습니다. 


살아 생전에 못해드렸으니, 돌아가신 후에라도 잘 모시겠다는 심정이겠지요. 정성껏 제사 모신 덕분에 우리 가족 지금껏 잘 살아왔으니, 미신이라도 기어이 믿는 아버지 마음을 백 번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경우가 다릅니다. 사람이 다쳤습니다. 부엌에서 총대 메고 제사 준비를 총괄해야 할 사람이 다쳤으니, 그냥 이번 한 번 제사 없이 넘어가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어서, 오늘 저녁 먹으면서 다시 말씀드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시장에 가서 제사 음식 전문으로 장만하는 가게에 주문해 두었다. 상, 중, 하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냥 '중'으로 정했다. 45만원이라길래 결제도 미리 해버렸다. 제사 당일 저녁 6시까지 집으로 배달해준다 했으니, 은대 너가 대충 차려서 상에 올리고 절 두 번 하고 끝내도록 하자."


며느리한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강요한 게 아니라, 그래도 제사는 지내야 하니 돈 주고 음식 시키자는 의미였던 겁니다. 저녁 먹는데, 아버지 말씀을 들은 아내는 울다가 웃으며 제 눈치를 보았지요. 


너무나 당연한 결정을 해주신 건데도 아버지께 감사한 마음 들었습니다. 조상 모시는데 남의 손으로 만든 음식 올리는 거 아니라고 과거에도 몇 번이나 고집을 부리셨거든요. 며느리 다쳤다 하니 80년 고집을 내려놓으신 겁니다. 


아내는 연신 싱글벙글입니다. 저는 45만원 봉투에 넣어 아버지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그 돈을 아내에게 건네며 뼈에 좋은 거 사먹으라 하십니다. 저만 돈 깨졌습니다. 


여차하면 이번 기회에 제사 음식 주문 제작(?)을 시스템으로 만들까 합니다. 조상 모시는 가장 큰 이유가 집안 화목일 테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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