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도 도서관 있네. 내일 도서목록표 들어오는 날이니까 책 신청하게."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살면서 책 읽은 적 없지만, 감옥에서 긴 시간 잘 보낼 방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생각보다 책이 많고 다양했다. 처음에는 신간 위주로 신청했으나, 시간 지날수록 장르 불문 작가 불문 마구 빌려 읽었다. 책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했는데, 그들의 '처음'은 나 못지않았다. 시련, 고통, 고난, 역경, 분노 등 도저히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상황들. 나는 점점 더 책에 빠져들었다.
시간 때우기로 시작한 독서이지만, 점점 '나도 작가나 한 번 해 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글을 써 본 적도 없고 책도 읽은 적 없어서 막막했지만, 그래도 작가가 되는 것이 당시 내 상황에서 가장 마땅한 일이라고 여겨졌다. 어차피 취직은 불가능할 것이고, 다른 일도 밑천 없으니 시작조차 못할 터였다. 돈 들지도 않고, 잘하면 떼돈을 벌 수도 있으니 한 번 해 보자 마음먹었다.
내가 쓴 글인데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작가가 된다는 건 정말이지 타고난 재능 있는 사람들만이 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골백 번은 더 펜을 던져버렸고 노트를 찢어버렸다. 그러면서도 달리 먹고 살 방법이 없으니 다시 꾸역꾸역 글을 썼던 것이다.
책에서 한 문장 읽는다. 노트에 한 줄 쓴다. 어느 부분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고 수정한다. 노트 한 페이지 채우는 데 며칠씩 걸렸다. 평생 해 보지 않은 '독학'을, 나는 감옥에서 치열하게 했다.
똑같은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편의 글 분량 채우는 것도 보통 일 아니었다. 문법 틀리는 건 말할 것도 없었고, 같은 단어나 내용이 줄줄이 중복 되는 것도 참 보기 싫었다. 곁에 앉은 사람한테 한 번 읽어 봐 달라고 부탁한 적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들은 한결같은 평가를 내놓았다. "무슨 얘기 쓴 거요?"
나는 지금껏 아홉 권의 책을 출간했다. 619명의 작가를 배출했다. [자이언트 북 컨설팅]이라는 글쓰기/책쓰기 전문 과정을 운영중이다.
감히 말하건대, 안 되는 일은 없다. 나는 세상에서 글을 제일 못 쓰는 사람이었다. 노력하고 공부하고 연습하고 훈련하고 반복하면 책을 출간할 수 있다. 그렇게 쌓은 실력과 노하우로 초보 작가들 코칭할 수도 있다.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란 실력이지만, 계속 공부하고 있으니 그 또한 감당할 수 있다.
이제 나는 스스로 증명하였으므로, 무슨 일이든 "안 된다, 못하겠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어졌다. 쉽지 않다. 힘들고 어렵다. 당연하다. 낯선 일을 새로 시작하고 도전하는데 어찌 만만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누군가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설령, 바라는 목표 지점까지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공부하고 노력하고 연습하고 훈련하는 동안, 출발 지점에 서 있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을 테니.
'베스트셀러'라는 말을 싫어한다.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이 매일 쓰다 보면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 처음부터 '베스트셀러를 쓴다'는 말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다. 베스트셀러 쓰는 법이란 게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 어렵고 힘들다는 대한민국 모든 출판사가 가장 먼저 배우고 익혔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글쓰기/책쓰기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분야이다. 배우고 익히며 쓰고 고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체득하는 기술이다. 일주일이나 한 달 반짝 배워서 척척 성과를 내는 특정 분야 일들과는 개념부터가 다르다. 어떠한 경우에도 '빨리'와 '쉽게'라는 말은 적용할 수 없는 분야이다.
나는 지금도 감옥에서 머리 쥐어뜯으며 쓰고 지우고 고치고 찢고 다시 쓰던 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도 책을 읽으며 내가 쓴 글을 비교하고 다듬는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아주 조금씩 내 글이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그렇게 배우고 익히는 모든 내용을 수강생들과 나눈다.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나. 감옥에서 내가 제일 많이 했던 고민이다. 처자식 있고 노부모 계신데 가장인 내가 마땅히 걱정하고 근심할 일 아니겠는가. 그러던 중에 글쓰기를 만났다. 처음엔 두 가지 이유뿐이었다. 글 쓰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잘하면 큰돈 벌 수도 있겠다는 생각.
매일 글을 쓴 지가 10년 넘었다. 글 쓰는 데에는 여전히 돈이 들지 않는다. '잘되어서' 돈도 제법 벌었다. 엊그제 메일 한 통 받았다. 어떠한 이유로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니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좀 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이었다. 진심 담아 장문의 답장을 써서 보냈다.
세상에는 여전히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나는 그들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 아니, 굳이 글쓰기/책쓰기가 아니더라도 자신과 자신의 삶을 믿었으면 좋겠다. 인생 뿌리까지 뽑아낼 만큼 큰일은 여간해선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네 생각이 다만 그럴 뿐이다. 버티고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다시 일어서는 때 만날 수 있다.
오늘도 글 쓰고 책 읽는다. 주말인데도 아침 강의 마친 후 종일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삶이기 때문이다. 쓰고 있을 때 나는 존재한다.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