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건, 그리고 관심
초보 작가들에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라고 하면, 많은 이가 "OO년도에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님은 무엇을 하시고, 형제자매는 어떠했으며, 친구들과 동네에서 무엇을 하며 놀았다."는 식으로 씁니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그 형식이 대부분 비슷해서 마치 모든 작가가 같은 핏줄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부터 중도에 훅 치고 들어가도 됩니다. 예를 들어, 지독한 감기 몸살에 걸렸다고 가정해 봅시다. "며칠 전부터 오한이 생기고 기침이 심해졌다. 회사에서 근무하는데 식은땀이 흘렀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병원에 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처음부터 순서 대로 쓰는 사람 많습니다.
"눈을 떠 보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링거병에 담긴 수액이 절반쯤 남아 있었다."와 같이, 첫 문장을 어느 상황의 한가운데에서 시작해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훅 치고 들어가는 방식이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갖게 하고 흡인력도 높일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지금껏 수도 없이 많고 다양한 방식의 글이 나왔고, 아직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방법으로 시작해도 무방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 대로 서술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렇게도 쓸 수 있고 저렇게도 쓸 수 있는데, 한 가지 방식만 고집하는 관념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어제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때가 많습니다. 대다수 사람이 "어제 무엇을 했다"라고 첫 답변을 하는데요. 아마 어제는 누구라도 아침에 눈을 뜨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씻고 면도를 하거나 화장을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런 기본적인 사실은 다 생략하고 곧장 점심이나 저녁 때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먼저 떠올리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 이야기를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시간 순서에 따라 서사적 구조로 글을 쓸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가장 감동적이었더, 가장 슬펐던, 가장 아팠던, 가장 행복했던 순간부터 쿡 찌르며 시작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5미터 담장 아래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저렇게 쉽게 열릴 지 몰랐다. 나는 그 문을 통해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1년 6개월만이다."
이것이 저의 소개글 첫 문장입니다. 밑도 끝도 없이 곧장 질주하는 것이죠. 자세한 내용이나 기본적인 사항은 뒤에서 차차 풀어내도 됩니다. 독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이 우선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오늘, 그리고 인생 어느 순간에 있었던 일을 글로 씁니다. 기억에 남는 '사건'을 중심으로 쓰는 것이죠. 그 '사건'을 쓸 때,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의 흐름에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쓰고 싶은 부분부터 냅다 질러 써도 상관없다는 뜻이죠.
다만, 이렇게 쓰기 위해서는 대전제가 필요한데요. 그것은 자기 삶의 순간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관심을 가져야 보입니다. 보여야 쓸 수 있고요. 책을 쓴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뭘 써야 하나 고민부터 합니다. 관심 가지고 찾아 보면 쓸거리가 넘쳐나는 게 인생입니다. 자기 삶의 모든 순간에 이야기가 있다는 확신 갖는 것이 먼저입니다.
필요한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자기 삶의 이야기가 의미 있고 가치롭다는 확신이죠. 대부분 초보 작가가 자기 삶을 별 것 아니라 여깁니다. 그런 경향이 있지요. 감옥에 다녀오거나, 큰돈을 벌어 성공했거나, 화성에 다녀오거나, 죽다 살아난 경험 있어야 글을 쓸 만하다 착각하는 듯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왠지 모르게 우울한 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하늘 바라보다 기분이 괜찮아진 이야기도 얼마든지 의미가 있습니다.
문법 등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도 있지만, 글 쓰는 방법은 다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는 사실 잊지 말길 바랍니다. 내가 쓰면 그게 양식입니다. 내가 쓰면 그것이 방법이고요. 기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부터는 응용하고 확장하는 것도 기술입니다. 자신감 갖고 쓰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