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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28. 2024

표면적 사건 아래 진실한 감정

나는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길 바랐다


상담실 문을 열었을 때, 창 쪽으로 몸을 돌린 채 서 있는 엄마를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선생님은 기어이 엄마를 부르고야 말았다. 그토록 사정을 하면서 매달렸는데. 선생님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엄마의 표정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선생님은 엄마와 마주 앉았고, 나는 그 사이에 엉거주춤 선 것도 아니고 앉은 것도 아닌 그렇게 끼어 있었다. 

"은대는 애가 참 착실해요. 말썽도 없고, 시키는 일도 잘하고, 다른 애들한테 모범을 보입니다."


선생님은 쓸데없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담배 피다 걸렸다는 이유로 엄마까지 학교로 불러다놓고 칭찬은 무슨.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손가락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유 선생님, 정말이지 너무 죄송합니다. 저도 얘가 담배를 피우는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엄마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담임 선생님한테 걸린 적 있었다. 야단을 치거나 몽둥이로 때리거나 운동장을 돌리거나,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냅다 전화를 하시더니 초등학교에 근무중인 어머니를 당장 학교로 오라 했던 것이다. 


마약을 한 것도 아니고, 친구를 때려서 병신을 만든 것도 아니고, 성적이 갑자기 1등에서 40등으로 떨어진 것도 아닌데. 선생님은 왜 엄마를 학교로 불렀을까. 그때 심정은 정말이지 담임선생님 얼굴을 할퀴고 싶을 정도였다. 


30분쯤 면담 후, 엄마는 먼저 집으로 가셨다. 나는 자율학습까지 마쳐야 했다. 교실로 들어가니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야! 어떻게 됐냐? 정학이냐?"

"엄마는 뭐래냐? 선생님은 뭐래냐?"

"야, 나 진짜 식겁했다. 너 딱 걸렸을 때, 나 옆칸에 있었잖아. 바로 문 잠궜지. 휴. 은대 너 아니었음 내가 걸렸을 거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집에 가지 말고 그냥 어디든 도망가 버릴까. 수도 없이 생각하면서도 걸음은 집을 향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가 안방에서 거실로 나왔다. 

"자알 했다! 아주 자알 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뭐? 담배를 피워? 왜, 술도 마시지 그러냐!"


술은 원래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엄마 앞에서 나는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아직 가방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데, 작은방에서 누나가 튀어나왔다. 

"담배를 피우셨다고? 자알 했다! 아주 자알 했다!"


아버지는 그 날 야간 근무를 서고 밤 12시 넘어서 들어오셨다. 밤에는 식구들 다 잠들어서 아무 일 없었다. 아침에 학교 가려고 일어나 씻고 준비하는데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다 때려치워라! 공부는 무슨! 학교는 뭐하러 가냐! 그냥 다 집어치워!"


학교 가는 길에 슈퍼에 들러 '88라이트' 한 갑과 라이터를 샀다. 버스 정류장 옆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서 길게 한 모금 빨아당겼다. 갑자기 어제 선생님한테 빼앗긴 담배와 라이터 생각이 났다. 그렇게 애들한테 압수한 담배와 라이터는 다 어떻게 처리하는 걸까. 선생님들은 담배값이 전혀 들지 않는 걸까. 


한 달쯤 지난 후, 학교에서는 금연과 금주에 관한 비디오를 상영해 주었다. 친구들과 나는 시커멓게 썩어가는 사람의 폐와 목에다 구멍을 뚫어 물을 마시는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교육용 비디오 시청이 끝난 후, 우리는 화장실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야, 오늘 자율학습 째고 당구 치러 갈래?"

"누구누구 가는데?"

"뭐 맨날 가는 멤버 그대로지. 영철이랑 훈호, 그리고 나랑 은대 너."


거짓말이 아니라 그 날은 정말 공부를 좀 하려고 했었다. 영민이가 당구장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나는 그 해 대학 입시에 떨어졌다. 영민이와 영철이와 훈호는 다 붙었다. 인생 처음으로 실패의 쓴맛을 보았는데,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다 성공하는 바람에 내 실패는 더 쓰리고 아팠다. 개새끼들. 의리도 없는 배신자 새끼들. 


1월에 재수 학원에 등록했다. 영민이가 집으로 전화해서 다 같이 겨울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살인의 충동을 느꼈다. 1월은 추웠다. 그래도 재수 학원은 학교와는 달리 히터가 빵빵하게 나왔다. 나는 다 구겨진 교과서와 참고서를 다시 펼쳐 책꽂이에 꽂아야 했다. 


재수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담배를 피웠고, 당구를 쳤고, 가끔 술도 마셨다. 여자도 만났다. 그러면서도 학교 다닐 때와는 달리 제법 공부도 했다. 실패는 두 번 하고 싶지 않았다. 


재수 학원에 다녔던 그 해 12월. 나는 해당 대학에 전화를 걸어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당구장에서 담배 피던 중이었다. 그 날은 집에 들어갈 때 껌을 씹지 않았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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