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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Nov 29. 2024

두 번째 삶이라는 기회

그때 그 순간


K는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 나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 연달아 몇 잔을 퍼마시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연수 기간에 첫 날부터 지각하고, 강의 시간에 휴대전화를 압수 당한 뒤에도 이번 생은 망했다고 푸념했다.


세계 여행을 다니며 방랑자처럼 사는 게 꿈이었다는데, 결혼해서 애 둘 낳고 일과 가정 사이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면서도 이번 생은 다 망쳤다고 욕했다. 가수 박재범 같은 몸을 만들겠다며 퇴근 후 헬스클럽에서 사흘 운동하고는 다시 술자리에 나와 삼겹살을 먹으면서도 이번 생은 망했다고 툴툴거렸다.


친구들과 나는 그런 K에게 매번 구박을 주었다. 망하고 끝나고 망친 인생을 왜 그리 열심히 사느냐고. 그럴 때마다 K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아 보는 거라고 대답했다. 희망을 놓지 않은 K를 예쁘게 봐 주어야 할지, 망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K를 부정적인 인간으로 봐야 할지, 우리는 늘 헷갈렸다. 


사업 실패하고 감옥에 갔을 때, 나도 모르게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중얼거렸다. 오래 전 함께 어울렸던 K의 말버릇이 은연중에 내게 스며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갑자기 툭 튀어나온 말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K는 현실에 대한 불평과 불만의 일종으로 망했다는 말을 썼지만, 나는 정말로 모든 걸 잃고 망했다. 혹시 나도 K처럼 삶에 대한 희망을 쥐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 게 없다면 즉시 삶을 접어도 아쉬울 게 없겠다고 생각했다. 희망. 아직도 그런 게 남아 있을까.


쇠창살로 가려진 창문 아래 조그만 식구통이 있었다. 밥과 반찬이 그 곳을 통해 방으로 들여졌다. 처음엔 내가 개가 된 기분이었다. 적응은 빨랐다. 며칠 지나자 밥 때만 되면 그 구멍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희망. 아직도 그런 게 남아 있을까. 


감옥에서 글을 썼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어쩌면 남은 인생 글 쓰면서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매일 글을 썼던 것이다. 참고로, 나는 글을 참말로 못 썼다. 


내가 맨 처음 썼던 글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시험을 보다가 바지에 오줌을 쌌던 이야기다. 잔뜩 긴장한 채 시험을 봤는데, 손을 들고 선생님에게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마침 같은 학교에 근무중이던 엄마에게 달려가 펑펑 울었고, 얼른 집에 다녀온 엄마 덕분에 축축하게 젖은 바지와 빤스를 갈아입을 수 있었다는, 그런 내용의 글이었다. 


어린 시절 이야기. 살면서 새카맣게 잊고 살았던 사건. 감옥소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처박고 글을 썼다. 나는 그때 한참 젊은 엄마를 만났고, 어린 나를 만났고, 아직은 때가 묻지 않은 나를 직접 볼 수 있었다. 그 글을 쓴 날, 나는 감옥에 들어간 이후 처음으로 웃었다. 


지나간 시절 이야기를 글로 쓰는 동안, 내 머리와 가슴과 혈관은 모조리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어제와 오늘, 블로그에 두 편의 글을 쓰는 동안 '엄마'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다. '어머니'라고 부를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아련함과 서글픔이 동시에 몰려와 몇 번씩이나 키보드에서 손을 내렸다. 


나는 강사다.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한다. 그것이 조언일 때도 있고, 잔소리일 때도 있으며, 야단일 때도 있고, 그저 웃자고 하는 소리일 때도 많다. 9년째 강의를 하고 있어서 낯선 사람과 대화 나누는 게 두렵지 않다. 그럼에도 글을 쓸 때마다 만나는 어린 시절 '나' 앞에서는 도무지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순수하고 순박했던 어릴 적 내게, 지금의 나는 자꾸만 미안한 것이다. 


삶은 오직 한 순간이다. 지나가버리는 지금은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 다만, 글을 쓸 때만큼은 다르다. 나는 지난 삶을 자주 만난다. 같은 순간 같은 사람 같은 일이어도, 글을 쓸 때마다 다른 의미 다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쓰는 사람은 쓸 때마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삶을 만들 것인가. 지금 생각처럼 소박하지만 단단한 각오로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허망한 상상을 하기보다는, 글 쓰며 만나는 두 번째 삶이라는 기회를 귀하게 여기는 게 낫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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