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장이 Nov 29. 2024

문득 기억이 났다

지난 날의 어느 순간


중학교 3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에게 중학교 시절은 "있기는 있었지만 하나도 기억 나지 않는 시간"일 테지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3년 동안 사랑을 나눈 사람이 있는데, 어떠한 이유로 모든 기억을 잃었다면.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 그 3년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겁니다. 


기억하지 못하면 내 인생이 아닙니다. 주변 사람들이 볼 때는 "그래도 틀림없이 너의 인생이다!"라고 주장하겠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일 뿐이겠지요. 


우리는 얼마나 많이 잊고 살아가는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와 고민들 때문에, 오래 전 분명 존재했던 아름답고 순수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모조리 잊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 많습니다. 


얼마 전, 사무실 천장 등 하나가 꺼져서 철물점에 다녀와 새로 끼운 적 있습니다. 의자를 밟고 올라서서 전구를 갈아 끼우는데, 문득 대구 효목동 기자촌에 살면서 아침마다 고무로 된 통을 들고 물차 앞에 줄서서 물을 받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기억은 그렇게 어느 순간 갑자기 저를 덮치곤 합니다. 아! 그래! 맞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물이 끊기는 일 자주 있었거든요. 바가지며 양동이며 온 식구가 골목 끝에 나와서 줄을 섰습니다. 물차가 오면 최대한 많이 받으려고 애썼고, 그걸 집까지 들고 가는 동안 줄줄줄 다 흘리기도 했었지요.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새카맣게 잊고 지냈던 과거 어느 순간의 기억이 퍽 하고 떠오르는 겁니다.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면, 마치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만난 듯 반갑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며 아련하기도 합니다. 


글쓰기의 가장 바닥에는 기억이 존재합니다.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줄도 쓸 수 없을 겁니다. 삶의 곳곳에 존재하는 어느 순간의 기억들.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행위가 바로 글쓰기란 말입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 그의 품으로 달려가 안기는 순간, 우리는 그런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그 눈물은 감동이며 감탄이며 기쁨이자 반가움입니다.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행이다!" 느끼는 것이지요. 


지난 시절을 떠올리지 못한 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이 참 삭막하고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시절 내게도 친구가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어떤 사건이 있었고, 고민이 있었고, 또 열심히 살았던 흔적이 있습니다. 내 인생입니다. 소중한 내 인생입니다. 


그런 시간들을 모두 잊는다는 건, 지금 열심히 살고 있는 이 모든 순간들도 결국 잊혀진다는 얘기인데요. 허무하고 공허한 일이지요. 모든 순간을 기억하기란 불가능할 겁니다. 그러나, 몇 조각이라도 지난 시간을 떠올리고 기리는 것은 꼭 필요한 행위라고 믿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지난 시간 속의 나를 다시 만나는 일입니다. 다 지나갔으니까 그냥 잊고 살아도 된다?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 집착하여 현재를 놓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과거를 무시한 채 지금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는 데에만 급급한 것도 바람직한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자기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가져야 합니다. 철 없었던 시절의 나, 머리를 빡빡 깎았던 나, 밤새도록 쓴 편지를 결국 전하지 못했던 나, 담임 선생님 결혼 소식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나, 일에 치이고 관계에 얽히고 책임 때문에 어쩌지 못한 채 사는 게 힘들다 한숨 짓던 나. 


언제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았더라도,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을 사랑해야 하는 겁니다. 


한 줄씩 꾹꾹 눌러 씁니다. 어느 순간 툭 떠오른 기억을 놓칠세라 얼른 메모를 하고, 노트북 앞에 앉아 그 날의 기억을 더듬다 보면 어느 새 저는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저를 만나곤 합니다. 그럴 때면, 슬픈 장면도 아닌데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루만에 책 한 권을 써서 수익화를 창출한다는 말을 접할 때마다 속상하고 화가 납니다. 지나온 시간 어느 한 구석에 잊고 살았던 내가 있습니다. 분명 내 인생인데도 까맣게 놓치고 살았던 거지요. 손 한 번 잡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 멘탈 강화 바이블!! <황금 멘탈을 만드는 60가지 열쇠>

- 도서구입 바로가기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460440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