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지금, 처음부터 다시
오늘 유난히 글이 잘 써집니다. 상관없습니다. 내일 또 새로 써야 합니다. 오늘 글이 형편없습니다. 상관없습니다. 내일 또 새로 써야 합니다.
글이란 게 이렇습니다. 어제 아무리 멋진 글을 썼다 해도 오늘 빈 페이지 새로 써야 하고요. 어제 글을 다 망쳤다 하더라도 오늘 빈 화면 새로 채워야 합니다. 새로운 날이 되면 새 글을 써야 합니다. 어제와 오늘, 글을 잘 썼다고 해서 방방 뛸 일도 아니고 글 망쳤다 하여 좌절할 것도 아니란 뜻입니다.
영속성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기고만장 자만과 오만을 막아주고, 절망과 좌절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새로운 페이지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든, 오늘 새로운 날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생각이 어제까지 일어났던 일에 집착하고 매달리는 탓에 자꾸만 오늘과 지금을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 현재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과거에만 연연해 있으면 오늘을 또 망치게 되지요. 오늘을 엉망으로 살면 그게 또 내일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악순환이 반복 되면 결국 삶을 망치게 되는 겁니다.
오늘과 지금에 집중하는 사람은 과거 영광이나 시련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순간에 행복과 기쁨을 느낍니다. 불행한 사람 대부분은 어제에 대한 후회와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삽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는 개인의 선택이겠지요.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잃었던 지난 시절을 돌이키며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 보냈던 적 있습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바꾸려고 허망하게 애를 썼지요. 불쌍한 인간으로 살았습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느라 밤잠 설치며 살기도 했습니다. 내 삶이 점점 더 힘들어지면 어쩌나. 계속 이렇게 막노동이나 하면서 살게 되면 어쩌나. 하나뿐인 아들 장가 밑천도 대주지 못하면 어쩌나. 이런 쓸데없는 걱정과 근심을 하느라 제게 주어진 하루하루 똑바로 살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철저하게 오늘과 지금만 살아갑니다. '어제'는 유일하게 글감으로만 활용합니다. '내일'은 유일하게 목표 세울 때만 생각합니다. 그 외에는 싹 다 오늘과 지금만 살려고 노력합니다. 예전에 비하면 걱정과 근심도 확 줄었고, 두려움도 거의 사라졌습니다.
"어제 글을 열 편이나 썼어요!"
"내일 또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다 됐고, 오늘 지금 글 쓰세요. 그게 전부입니다. 어제 뭘 어쨌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습니다. 내일 뭐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늘 얘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지금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제 과거는 치욕스럽기 때문에 아예 생각하기도 싫었는지 모릅니다. 제 미래는 암울했기 때문에 아예 짐작하기조차 싫었는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저는 오늘과 지금을 사는 법을 배웠지요. 그게 훨씬 현명하고 지혜로운 방법이란 걸 살면서 깨달았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도 어제와 내일 때문에 생기는 것이죠. 어제 쓴 글이 형편없으니까 자신감 상실하게 되고, 내일 글 쓰는 게 부담스러우니까 자꾸만 미루게 되는 겁니다. 어제고 내일이고 다 필요없고, 그저 오늘 글 한 편 쓰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면 한결 수월하게 쓸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저는, 오늘 쓰는 이 글이 제 인생 마지막 글이라고까지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정성이 더 들어가고, 생각도 더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너무 매달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내일 또 새로 써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SNS 활동도 제법 재미 있습니다. 일전에 브런치에 글 올렸다가 3만회 넘게 조회수가 나온 적 있거든요.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밤 12시 되니까 "0"가 되더군요. 어차피 내일이 되면 "0"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조회수 안 나왔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고, 오늘 조회수 터졌다고 방방 뛸 일도 아닙니다. 매일 새로 시작합니다. 매일 새로운 날이 시작됩니다. 하루하루가 내 인생 전부라고 여기고 최선을 다하면, 사는 재미도 있고 불행에 얽매일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가슴에 새겨야 할 사실이 있지요. 상실의 아픔은 좀 다릅니다. 누군가를 잃은 사람의 마음은 그 상처와 아픔이 속절없이 지속됩니다. 하루빨리 상처와 아픔을 딛고 일어서 다시 웃는 날 오기를 바랍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사고가 발생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에게도 새로운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비통한 마음과 처절한 괴로움 감히 어찌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무슨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겁니다. 지켜보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