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내게 준 모든 것을 활용하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재해석하는 과정

Jan 28. 2025

'나'라는 인간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참으로 보잘것없다. 나는 지구를 구한 영웅도 아니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투쟁한 열사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대한 발명품으로 인류에 헌신한 것도 아니고, 지하철 승강장에 떨어진 아기를 구한 훌륭한 청년도 아니다. 이름 널리 알린 거장은 더더욱 아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가까스로 견디며 여태껏 살아온 일개 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 내가 책을 쓰고 강연을 한다는 사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누가 내게 "계속 책을 쓸 거냐"라고 묻는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내가 보고 듣고 체험한 모든 것들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그 모든 것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사는 게 이런 거다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때로 삶의 벽에 부딪힌 것만 같을 때, 이러한 의미와 가치와 재해석은 예외 없이 길을 만들어준다. 덕분에 지금껏 살아냈다.

첫 책에다 감옥 갔다 온 얘기를 쓸 때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자다가도 식은땀 흘리며 벌떡 깨곤 하는 것이 모두 수치와 모멸의 과거 때문인데, 아주 보란 듯이 나에 관한 부적절한 이야기를 드러내고 있으니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손가락질과 조롱을 보내더라도 꾹 참고 견디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얼마나 반복했던지 혓바늘이 날 정도였다. 괜한 수고였다. 독자들은 나를 겨냥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내 글로 위로받고 용기 얻고 희망 가졌다고 했다.

내가 겪은 모든 일은 절망과 좌절의 상처가 아니었다. 그저 경험이었을 뿐. 세상에는 경험을 '활용'하는 사람도 있고, 경험 때문에 '무너지는' 사람도 많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겠다 생각하며 쓴 글인데, 덕분에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힘들고 아픈 경험을 할 때면, 눈앞이 캄캄하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무슨 도 통한 사람도 아니고, 그러한 시련과 고난을 무덤덤하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이미 다 지나간 고통과 시련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삼아 곱씹으며 자기 삶을 절망으로 몰고 가는 사람 많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계속 아프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로 아픈 것인지, 아니면 아프다는 감정을 상상하면서 통증을 유발하는 것인지.

어찌 되었든 지나간 감정을 돌이켜 지금을 힘들게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지난 고통과 시련이 내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깨달았는가. 술술 풀리는 인생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역경 속에서 건져 올리는 거다.

또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글쓰기 최대의 적은 완벽주의라는 사실이다. 상처와 아픔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 재해석하는 일만 해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거기다 '잘' 써야 하나는 강박까지 품으면 한 줄도 쓰기 어렵다.

완벽한 글을 쓰자는 게 아니다. 잘 쓰자는 것도 아니다. 초보 작가는 말 그대로 쓰는 행위를 시작하는 이들이다. 부족하고 모자라도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이것이 초보의 특권이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쓰기 어렵다면, 지금부터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자기 인생 이야기를 펼쳐놓는다는 생각으로 적어 보길 권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경험이고 최악이 완벽주의란 걸 알았으니, 이제는 좀 가볍게 써도 되지 않을까. 노벨 문학상은 다음에 노리기로 하고, 지금은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것에 만족하는 게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이를테면, 내가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