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멋, 중년 남자의 외모

겉모습도 실력도 모두 갖춘 사람

Jan 30. 2025

바버샵 사장은 저보다 두 살 많습니다. 저와 나란히 서 있으면 누가 봐도 사장이 저보다 열 살은 어려 보입니다. 키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얼추 닮았는데, 저는 실제 나이보다 족히 열 살은 많아 보이고 그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입니다.

오늘 머리 깎고 염색하러 갔습니다. 허름한 츄리닝에 점퍼 걸치고 갔더니 제법 친해진 사장이 농담을 건넵니다. "옛날 우리 동네에 똑같이 입고 다니던 바보 형 있었는데."

머리 깎고 염색하는 동안 쉴 틈 없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은 오십 대 남자들도 외모를 가꿔야 하고, 나이 먹을수록 패션 감각도 갖춰야 한다고요. 그래야 어디서든 당당하게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는 형님은 왜 여태 장가도 못 갔냐고 한 마디 하려다가 그냥 입 다물었습니다.

남자 외모? 그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자기 일에 충실하고, 능력 키우고, 가족 돌볼 수 있을 만큼 능력 갖추면 충분하다고 믿었지요.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고, 아무 불편함 느끼지 못했습니다.

9년째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거의 매일 수강생들 앞에서 글쓰기/책쓰기를 비롯한 동기부여 및 삶의 태도에 관해 열강합니다. 남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하다 보니, 한 번씩 모니터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씻고 면도하고 머리도 만졌는데, 왠지 추레하고 없어 보이고 시들해 보이는 제 모습에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연애할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무슨 외모 타령인가 싶어 그냥 넘기곤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만 생각이 다 들더군요. 좀 가꿔야 하나. 에잇!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거지 뭐! 아닌가? 신경 좀 써야 하는 건가? 어째야 하나?

근사하게 차려 입고 머리 휙 넘기고 은은한 향기까지뿜어내는 남자. 같은 남자인 제가 봐도 멋집니다. 물론, 겉만 화려하고 속은 썩어 문드러진 한량들은 제외합니다. 실속도 있고 자기 앞가림 잘하는 당당하고 멋진 사업가의 모습은 누가 봐도 훌륭해 보이지요.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니, 얼굴에 검은 반점도 제법 생겼습니다. 피부도 거칠어졌고, 배만 불룩 나왔고, 팔과 다리는 가늘어졌습니다. 나이 들수록 점점 형편없어지는 외모에 갑자기 힘이 쪽 빠졌습니다.

근육을 키우자니 의사가 아직 신경과 척추에 무리가 있어 절대 운동하지 말라고 하고, 옷이라도 갖춰 입을라니 괜히 쓸데없는 곳에 돈 쓰는 것 같고. 얼굴 생김새야 뭐 타고난 거니까 어쩔 도리 없겠지만(아주 못생긴 편은 아님), 근육이나 옷차림 정도는 얼마든지 가꿀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만 복잡해집니다.

중년 남자가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건 어느 정도 살 만하다는 뜻이기도 할 테지요. 배가 불렀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자기 관리'이기도 하거든요.

아침에 일어나면 샤워부터 하고, 면도 깔끔하게 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옷도 정갈하게 입고. 그렇게 자신을 가꾸고 나면 하루를 자신감 넘치게 살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동안은 이런 말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나이 들어 보인다는 말을 귀 따갑게 들었는데, 왜 오십 넘은 이제야 외모에 신경이 쓰이는 건지. 아들이 어학연수 떠나고 없는 동안 마음이 허전한 탓인가 싶기도 하고요. 설 명절 지나면서 아버지 이마에 주름살 보다가 문득 삶의 끝을 떠올린 탓인가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