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가끔 오징어가 된다
그는 몸이 아주 좋습니다. 사진으로만 봤지만, 얼굴도 제법 잘 생겼습니다. 남자다운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그런 사람 있구나 정도로 여기고 넘겼을 텐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아내가가 SNS를 통해 그와 정다운 소통을 나누는 모습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맨날 구박만 받습니다. 심한 욕설만 아닐 뿐 딱히 다를 바도 없습니다. 저한테는 늘 무언가를 바꾸라고만 합니다. 자기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달라 하면서, 저한테는 허구한날 이것도 바꾸고 저것도 고치라 합니다. 게다가 아내는, 제 SNS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몸 좋고 잘 생긴 그와의 소통 모습을 보니, 아주 깨가 줄줄 쏟아집니다. 이모티 눈에 하트가 철철 넘치고, 물결과 갈매기 표시가 가득합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깊은 소통을 유지했으면 저렇게 격식 없고 자연스럽고 편안하면서도 서로 존중하는 말투가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아내가 읽는 책을 같은 시기에 그도 읽었습니다. 아내가 영어 공부를 한다 하니 그도 영어책을 펼쳤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무슨 바람을 피웠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아내는 그저 SNS에서 아무 생각 없이 그와 소통을 했을 뿐입니다. 다만 그 기간이 조금 길었을 뿐, 만난 적도 없고 손을 잡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세상 어떤 남자라도 기분 좋을 일은 아니지요. 남자들에겐 인정과 칭찬의 욕구를 넘어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소유하고 싶은 욕구도 있습니다. 적어도 사랑하는 여자에게 '오직 나만 바라보라'는 마음은 품을 만하다는 거지요.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냈더니, 마치 저를 무슨 미친 사람 취급합니다. 정신병자 아니냐 하더군요.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아서 같이 못 살겠다고까지 합니다. 이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다시 그 사람의 SNS를 열어 보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화가 머리 끝까지 났던 저는, 그의 멋지고 잘 생긴 모습에 주눅이 들고 말았습니다. 와! 멋있긴 하네요. 몸도 끝내주고 얼굴도 씩씩하게 잘 생겼습니다. 만약 언제 한 번 기회가 되어서 둘이 나란히 설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완전히 오징어가 되고 말 겁니다.
이렇게 별 것도 아닌 일로 속상해 하는 저도 문제입니다만, 이럴 때 아내가 좀 다정하게 다독거려주면서 "나한텐 당신뿐이야" 한 번 말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몇 번을 말했냐! 당신뿐이라도 몇 번을 말했냐고! 아니 무슨 정신 이상도 아니고, 분명히 말했는데 못 들은 사람처럼 그러니 나도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
백 번 말하면 안 되나요? 천 번 말하면 안 됩니까? 듣는 사람이 그 마음을 느끼지 못했는데, 몇 번 더 말해주면 어디 덧납니까. 어린 아이 같은 질투와 시샘으로 시작한 감정이지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번져 점점 속이 상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한창 열애중인 남여"가 있다면, 제 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속편한 생각만으로는 상대를 잃기 십상입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믿음과 자신감 보여주어야 하고요. 여자는 남자에게 너만 바라보고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합니다. 다른 중요한 것들도 많겠지만, 제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딱 저 두 가지만 있으면 사랑에 금 가는 일 없을 거라 확신합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저 같은 사람과 함께 살려면 그와 같은 몸 좋고 잘 생긴 사람과의 로망도 있어야 숨통이 트이지 않겠습니까. 자꾸만 SNS에서 다정하게 그와 소통하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그만 다 잊고 내 삶에 집중하려 합니다.
세상에는 자유로운 영혼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그것이 무슨 법을 위반하고 도적적으로 큰 잘못이 아닌 경우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죠. 깻잎 논쟁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니고 손목을 잡은 것도 아니고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잖습니까. 문제 될 것이 없지요.
그러나, 그런 자유로운 영혼들이 잊고 사는 게 있습니다. 법보다 도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란 사실입니다. 싫다 하면 그냥 안 하면 됩니다. 그게 뭐 그리 인류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상대가 싫다 하는데도 기어이 할 필요 있겠습니까.
아내가 저한테 말하더군요. 마음을 좀 넓게 가지면 안 되겠냐고 말이죠. 저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자유로운 영혼, 조금만 닫아주면 안 되겠느냐고요.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던데요. 이번에 저 완전히 KO패 당한 거지요. 그 몸 좋고 잘 생긴 쇄키한테 꼭 전하고 싶습니다. 밤길 조심해라!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