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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출발은 백지라는 착각

메모의 중요성

by 글장이


노트북을 열고 한글 파일을 클릭하여 하얀 색 바탕화면이 뜨면, 왼쪽 맨 위에서 커서가 깜빡거리기 시작합니다. 글 쓰는 사람은 바로 이 순간의 막막함에 동의할 겁니다. 오죽하면 '백지의 공포'라는 말까지 고유명사로 등극했을까요.


많은 초보 작가가 바로 이 '백지의 공포' 때문에 글쓰기를 아예 시작조차 못하거나 책상 앞에 앉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합니다. 간신히 첫 줄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아직 한참 많이 남아 있는 하얀 색 빈 화면이 여전히 망망대해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글은 백지에서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하얀 종이에 깜빡이는 커서. 텅 빈 화면 맨 위 왼쪽 끝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는 오늘 많은 초보 작가들에게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 나는 왜 비가 내리는 날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 만약 내가 글쓰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 어머니는 여전히 김치 담고 계신다

- 아들은 헤어스타일에 유난을 떤다

- 새벽 2시. 눈이 말똥말똥하다.

- 또 속았다. 으이구 등신아!


첫 번째 형식은 일상에서 아무 순간에나 떠오르는 생각을 마구 적는 메모입니다. 별 것도 아닌 한 줄. 처음엔 이런 메모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지요. 그러나,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이 메모들은 더 없는 아이디어 창고가 되어 줍니다.


비가 내리면 채권자들의 독촉이 줄어들었지요. 그때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습니다. 글쓰기가 내 삶에 얼마나 소중한 도구인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여든 넘은 어머니는 여전히 당신이 집안에서 어떤 중요한 존재임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 갖고 계십니다. 머리를 이리 저리 만지는 아들을 보면서 언제 저렇게 컸나 싶습니다. 상처와 아픔은 잠을 달아나게 하고요.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뒷통수를 맞을 때의 아픔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오직 단 한 줄의 메모. 바로 그것이 내가 쓰는 한 편의 글 씨앗이 됩니다. 짧은 문장 하나가 뇌 속에 박혀 있던 기억을 끄집어냅니다. 글은 백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한 줄의 메모에서 시작합니다.


- 모든 생명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때 그 때 비로소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 - 레프 톨스토이

- 사랑이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 니체

- 지혜는 들음으로써 생기고 후회는 말함으로써 생긴다. - 영국 속담

-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페르난두 페소아


두 번째 형식은 책에서 찾은 귀한 문장을 하나하나 적어두는 메모입니다. 책 한 권을 읽는다 해서 그 속에 담긴 모든 문장을 달달 외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나, 평생 간직하고 싶은 서너 개의 문장은 늘 있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멋진 문장을 메모하고 수시로 찾아 읽다 보면, 그 문장이 내 안으로 체득되어 나중에 글을 쓸 때 큰 도움 됩니다. 문장 그 자체 의미로써 내 삶의 경험과 깨달음을 정리할 수도 있고요, 문장의 형식만 따가지고 와서 내가 전하고자 하는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또한 씨앗문장이 됩니다. 백지를 마주하고 끙끙대며 첫 줄을 생산해내는 것보다, 이미 체득하고 있는 근사한 문장에서 출발하여 나의 지식과 경험을 대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글쓰기입니다. 글은 백지에서 출발하는 게 아닙니다. 메모에서 시작합니다.


메모는 형식과 규격 따위에 연연할 필요 없는 자유로운 '쓰기'입니다. 싸구려 수첩 한 권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든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끄적일 수 있습니다. 당장은 아무 의미 없는 몇 줄 단어와 구절이지만, 그것이 씨앗으로 발아하여 거대한 나무가 되는 것이지요.


자신의 머리를 맹신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모두 기억하고 다 생각해내며 A4용지 1.5매가 넘는 방대한(?) 양의 글을 술술 쓸 수 있다고 자신하는 거지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의 경험으로 비추어보자면, 머리보다 손을 믿는 것이 더 확실하고 유용하다는 사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글 쓰는 것이 힘들다 어렵다 하소연하기 전에, 작은 수첩에 오늘 하루 메모하는 습관부터 길러 보면 어떨까요. 글을 쓸 때마다 자신이 직접 정리한 메모를 펼쳐 읽으면서 작은 아이디어를 펼쳐 나간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재미도 있고 깊이도 생기는 집필을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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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백지에서 출발하는 게 아닙니다. 메모에서 시작합니다. 메모는 작은 아이디어 씨앗입니다. 씨앗은 반드시 나무가 됩니다. 모두가 메모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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