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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를 아는 순간부터 행복해진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쓸모와 가치

by 글장이


아들이 키보드 하나 사 달라고 하길래 사용하지 않는 것 중 하나를 골라 주었다. 가격이 꽤 나가는 물건이었지만, 어차피 내게는 별 쓸모가 없었다. 사무실 한 쪽 구석에 그냥 덩그러니 놓아둘 바에야 아들한테 주고 좋은 소리나 한 마디 듣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하루쯤 지났을 무렵, 아들은 거실을 가로질러 달리다시피 내게로 와 덥석 안겼다.

"아빠! 진짜 감사해요! 키보드 대박! 저거 해외 직구로도 못 구하는 거라서 성능도 끝내주고, 친구들이 다 부럽다고 그래!"


내가 준 키보드가 그렇게 좋은 거였나? 아들을 따라 작은 방으로 가 보았다. 데스크탑과 연결된 키보드에서는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게임용에 어울리게 숫자패드가 따로 분리되어 사용자 입맛에 맞도록 위치 잡을 수 있었다. 아들이 잠시 게임하는 걸 보여주겠다 해서 지켜보는데, 키보드 반응 속도가 빨라서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이었다.


괜히 줬나. 다른 싸구려 키보드를 줄 걸 그랬나. 저게 저렇게 좋은 건 줄 몰랐는데. 사무실 한 쪽 구석에 처박혀 있을 때는 애물단지였는데, 아들 손에 들어가니 세상 멋진 키보드가 되었던 것이다. 후회가 밀려왔다. 나름 키보드 덕후라고 자신했는데, 저리 멋지고 좋은 물건을 알아보지 못한 채 아들에게 덜컥 빼앗기고(?) 말았으니.


쓸모와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 물건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한 키보드라 하더라도 나는 그것의 쓸모와 가치를 전혀 알지 못했다. 설령 아들에게 주지 않고 내가 계속 가지고 있었더라도 아마 그 키보드에는 먼지만 잔뜩 쌓였을 터다.


쓸모와 가치는 알아보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인정하고 보듬어주고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 주인의 눈과 마음에 따라 똑같은 물건도 역할을 다르게 한다. 키보드는 제 주인을 제대로 찾아간 거다.


오래 전, 조카가 눈 수술을 한 적 있다. 제법 큰 수술이라 병문안도 갔었는데, 막 수술을 마친 녀석의 양 쪽 눈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울컥 감정이 치솟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캄캄한 세상 얼마나 답답할까. 수술도 잘 되었고, 이틀 후에 붕대를 풀 거란 말을 듣고서야 겨우 마음 진정시킬 수 있었다.


"퇴원하면 외삼촌이 맛있는 거 많이 사 줄게."

누나네 가족을 뒤로 하고 병원을 나서는데, 갑자기 세상이 환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냥 보면서 사니까 보는 줄 알았고,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도 감사한 적 없었다.


쓸모와 가치는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빛을 발한다. 나는 내 두 눈의 쓸모와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었는가. 눈뿐만 아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그것이 축복인가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았는가. 모든 걸 당연하다 여기며, 한 쪽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키보드처럼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는 않았는가.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에게 이별을 선언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 나의 쓸모와 가치가 다 저물었다는 걸 의미한다. 나의 쓸모와 가치가 사라진 상대를 향해 매달려 봤자 나는 결국 저 구석에 먼지 쌓이 키보드 취급밖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가 됐든 자신의 쓸모와 가치를 알아 봐 주는 사람을 찾아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존재 가치도 살리고 행복도 누릴 수 있는 길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나의 쓸모와 가치를 진정 알아 봐 주는 이를 찾을 필요가 있는 거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만나 보았고 나의 쓸모와 가치를 높이 평가해 주는 사람과도 함께 해 보았다. 나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제대로 몰라주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꽁무니만 쫓아다닌 적도 없지 않아서 후회도 많이 되고 가슴도 아프다.


아들이 친구 만나러 외출한 동안, 아들 방에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가만히 놓여 있는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너의 쓸모와 가치를 몰라준 나를 용서해 달라며 키보드를 쓰다듬었다. 이제 너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주인 만났으니 마음껏 실력 발휘도 하고 인정도 받고 칭찬도 받으면서 잘 살아라.


눈이 있어 볼 수 있고 귀가 있어 들을 수 있으며 입이 있어 맛 볼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가진 무언가 하나라도 사라지게 된다면, 그제야 그 사라진 무언가의 쓸모와 가치를 알게 될 테지. 울며 불며 통곡을 해도 이미 사라진 것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귀한 줄 알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고마운 줄 알면서 살아야 한다. 길바닥에서 노숙 생활도 해 보았고, 앉은뱅이 책상에서 책 다섯 권 집필하며 신경과 척추 다 망가지기도 했었고, 돈 한 푼 없어서 아들 치킨 한 마리 사주지 못한 적도 있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현실이 얼마나 기적이고 축복인가 자꾸만 잊고 사는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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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를 아는 순간부터 행복해진다. 존재 가치를 느끼는 순간부터 인생은 의미를 가진다. 봄비가 내린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비가 온다. 창문을 열고 팔을 뻗어 비를 만진다. 지금 이 순간의 쓸모와 가치를 잊지 않도록, 오늘 또 주어진 하루를 살아낸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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