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잃어가는 과정
월요일이 가장 아프고 힘들었다. 토요일 밤에 로또 복권 당첨 되기를 간절히 바라다가 겨우 5천 원짜리 한 장 당첨되고 나머지 모두 쓰레기 되었을 때. 새로운 한 주는 어김없이 채권자들의 독촉 전화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삶을 끝내야겠다는 결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부모님과 아내와 어린 아들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차마 죽지 못하였다. 돈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결국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달라질 수 없는 인생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때, 절망과 좌절은 뼛속까지 파고든다.
비가 내리길 기다렸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는 빚 독촉 전화도 줄었고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매 순간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래도 비가 오는 날만큼은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다. 그 시절 비는 내게 유일한 희망이자 안도였다. 이후로 나는, 비 내리는 날을 사랑하게 되었다.
작년 5월. 갑자기 통증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전기로 지지는 듯했다. 아프다가 말다가 하는 게 아니라, 24시간 칼로 쑤시고 갈고리로 쥐어 뜯는 것 같았다. 서울과 대구와 부산, 용하다는 병원마다 찾아 다니며 원인과 치료법을 구했다.
"염증 때문에 신경 발작이 일어난 것이고, 거기에 척추 디스크까지 합세해서 아마도 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지지직거릴 겁니다."
누가 모르냐고. 그러니까 병원에 왔지. 증상이 궁금한 게 아니라 원인과 치료법을 알고 싶다고!
물리치료, 전기치료, 신경 주사와 척추 약물 투입. 수술과 시술을 거쳐도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통증이 줄어들 거라고. 의사는 내게 온갖 다양한 방법을 안내해 주었지만, 한 마디로 당장 낫게 할 방법은 없다는 것. 나는 또 한 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무려 넉 달 동안 두 다리를 질질 끌며 살았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해 신음소리만 냈고, 도저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아서 하루 한 끼도 채 되지 않는 양만 먹었다. 울었다. 사무실 화장실 문 위에 쇠로 된 봉 하나를 설치하고 줄을 매달았다. 그 아래 바닥에 주저앉아 짐승처럼 울었다.
'나 이제야 좀 살 만한데. 지난 시절 개고생하면서 여기까지 겨우 왔는데. 내가 무슨 죄를 그토록 많이 지었길래, 조금도 행복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인가. 살다 살다 이토록 아픈 건 처음이다. 기약도 없는 통증이라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큰 병원 죄다 뒤졌는데도 마땅한 치료법 안내 받지 못했다. 집에 누워 있다가 하도 아파서 동네 가까운 내과에 갔다. 그냥 아무거나 진통제 하나만 처방해 달라고. 그렇게 처방 받은 알약 세 알. 그 날 밤, 거짓말처럼 통증이 줄었다.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넉 달만이었다.
나는 지금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10년간 [자이언트 북 컨설팅]을 운영하면서 개인 저서 아홉 권을 출간했고, 628명 작가를 배출했다. 이제 돈 문제 때문에 골치 썩지 않는다.
책상 오른 편에 창문이 있다. 봄비가 내린다. 허리와 머리에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혼자서 전기치료를 한다. 아침에 약도 먹었다. 통증이 거의 없다. 아프지 않다. 아직도 작년 5월의 악몽이 생생하다. 두 번 다시 그렇게 아프고 싶지 않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삶과 몸이 고통. 아무런 대책도 해결책도 없이 온몸으로 고스란히 삼켜야만 했던 시련과 고통과 고난과 역경.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10년 전 이은대와 작년 5월의 이은대를 꼭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덜 아픈 시간이 반드시 온다고. 그러니, 버티고 견디라고.
폭풍 한 가운데 서 있을 때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망과 좌절만 느껴진다. 이대로 삶을 끝내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지금 아픔과 시련 속에 고통스러워하는 이가 있다면, 덜 아픈 시간이 반드시 오게 되어 있으니 참고 견디라는 말 꼭 전해주고 싶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나는 최근에 또 다른 종류의 아픔을 맛보았다. 아니, 지금도 그 아픔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힘들고 괴롭다. 허나, 예전처럼 절망하지 않는다. 이 아픔도 결국에는 줄어들고 사라질 거란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나는 실패로 무너져 최악의 삶을 살았다. 몸이 아파 견딜 수가 없어서 삶을 끝내려고까지 했었다. 그런데, 덜 아픈 시기가 오고 나니 그 시절 좌절과 고통을 통해 내가 많이 배우고 깨달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난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냥 아프기만 한 역경은 없다.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말도 안 되는 인생'을 상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좋은 일이 생기면 그 좋은 일이 영원할 것처럼 방방 뛰는 사람 있고, 나쁜 일 생기면 고통과 시련이 영원할 것처럼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 있다. 내가 딱 그랬다. 감정이 하늘을 치솟다가 땅으로 푹 꺼지는 사람. 에너지 소모가 크다 보니 늘 신경질적이고 불안하고 초조했다.
냉정하게 스스로를 살피고 의연하고 초연하게 세상을 상대하지 못한 탓에 크게 무너졌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인생 절반이 지나고서야 깨달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 좋은 일도 지나가고 나쁜 일도 사라진다.
백 년 인생을 내다보지 못한 채 매 순간 자신에게 닥치는 크고 작은 일들에만 연연하다 보니, 삶에서 무엇이 중요하며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인가를 잃어버릴 수밖에. 모든 것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찰나의 기쁨과 고통에 매달려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는 인생, 이제 그만 멈춰야 할 때다.
나는 지금도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겪고 있지만, 예전처럼 나 죽겠다 발버둥치지 않는다. 이 아픔이 언젠가 사라질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사라지고 줄어든다. 삶이란, 더 가지기 위해 애쓰면서 모든 걸 잃어가는 과정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