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어차피 꽃길 아니라면
꼭 한 번은 멈춰야 한다. 멈춤은 축복이다.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하고,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준다. 그것들은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멈추지 않은 탓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 많이 벌고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 함께 일하는 사람들, 나를 믿어주는 부모님, 나를 스쳐간 모든 사람들, 배우고 깨닫게 해 준 상황과 사건들. 삶에 주어진 모든 것들 덕분에 내가 존재하고 일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멈추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사업 실패는 충격적이었으며 고통스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모든 "이러해야 한다"는 인생이 일시에 다 무너졌을 때, 나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도 가치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삶은 강제로 멈춰졌다.
감옥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동안, 무너진 줄 알았던 내 삶이 그저 잠시 멈췄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끝'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다. 산을 오르다 중턱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쉰다고 해서 등산이 끝난 것도 등산을 망친 것도 아니란 사실과 비슷하다.
나는 다시 숨을 가다듬었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는 여유를 배웠으며, 어떤 삶이 진정 의미와 가치가 있는 것인가 공부할 수 있었다. 남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질주하는 동안, 나는 세상 뒷편에 물러나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할 수 있었다.
죗값을 치른다는 건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멸시와 조롱을 피하지 않았다. 상처를 온전히 직시하고 기꺼이 아플 수 있을 때 비로소 껍질을 벗을 수 있다. 나는 당당하지 못한 삶을 살았으나, 멈춘 덕분에 내가 부끄러운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잘못을 저지르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오직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 적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내게 실패와 멈춤은 행운이었다.
평범한 삶을 살던 내게 누군가 글을 쓰라고 했다면, 아마 나는 그럴 듯한 공자님 말씀 말고는 한 줄도 쓰지 못했을 거다. 최악의 실패와 절망을 책에 담아 출간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겠지. 나의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글을 통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는 의미와 가치는 평생 느껴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법정에서 파산 선고를 받고, 출소 후 할 수 있는 일이 마땅찮아 결국 막노동 현장을 전전했던 경험. 채권자들의 독촉을 이기지 못해 집을 나와 서울역과 대전역, 그리고 부산역을 오가며 노숙했던 시간들. 당시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경험들이 지금에 와서는 더 없는 글감과 성장의 씨앗으로 자리잡았다.
파산, 막노동, 노숙 등 인생 바닥에서의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모두 내게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는 누구를 만나도 당당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또 나와 마주하는 이들은 모두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내가 '큰 실패'를 경험한 덕분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인생 쫄딱 망해 보라"고 권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의도적으로 실패하는 사람도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행운이었다고,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거다.
누구나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나는 내가 겪은 모든 일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과거를 돌이키며 '그때 차라리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따위 후회는 아예 하지 않는다. 아파서 다행이었고, 힘들어서 다행이었으며, 시련과 고난과 역경의 한가운데를 온몸으로 통과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소설도 그렇게 쓰지 못할 거라는 기구한 경험을 한 덕분에 나는 작가와 강연가로 두 번째 삶을 누리고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지금 어떤 경험을 얼마나 참혹하게 하고 있든 상관없이 모두 자산으로 여겨야 한다. 엄청난 무기로 간주해야 한다. 성공 경험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지만, 실패는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다. 자신의 실패를 더 없는 복으로 여겨야 한다.
좋은 경험인가 나쁜 경험인가 가르는 기준은 없다. 오직 내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뿐. 최고급 세단을 타고도 힘들다 어렵다 투덜거리면 거지 같은 인생 사는 거고, 마을버스 타고 다니면서도 늘 밝게 웃으면 행복 넘치게 사는 거다. 아마도 글감은 마을버스 쪽에 더 많지 않겠는가.
고통과 시련 겪고 있다면, '아무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란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난이라면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적극적으로 겪어내야 한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돌파했을 때, 그 고난의 가치는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것이다.
우물쭈물 온간 인상 쓰면서 억지로 억지로 억지로 차마 어찌할 수 없어서 겨우 겨우 겨우 해내는 인생. 어쩌다 무사히 시련의 강을 건넌다 해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외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지 않겠는가.
살아 보니 그렇더라. 어느 하루라도 힘들지 않은 날 없고, 어느 한 순간 괴롭지 않은 때 없으며, 누구 한 사람 부딪히지 않는 존재 없다. 인생, 어차피 꽃길 아니라면 신발끈 단단히 묶고 성큼성큼 건너가는 것이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