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를 만나 잠시 안아주고 오면
용서는 다른 사람을 향해서만 베푸는 마음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향해서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행위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겁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저는 과거 사업 실패로 인생 절망을 맛보았습니다. 부모 가슴에 상처를 남겼고, 처자식 힘들게 했으며, 집안꼴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삶을 만나 치열하게 살아온 덕분에, 이제는 부모님에게도 어느 정도 한을 갚았고 처자식도 먹고 살 만합니다. 더 이상은 누구에게도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과거의 저 자신에게는 아직도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습니다.
저 자신을 향한 이런 마음 때문에 일상에서도 불쑥 감정이 폭발하고 아무 이유 없이 화가 나기도 합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하다는 생각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매일 술만 퍼마시며 허송세월 보냈고, 전과자 파산자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살게 되었지요.
저는 이제 저 자신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과 핑계로 용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절망과 좌절로 무너졌던 과거 경험 때문에 지금의 저를 또 한 번 망가뜨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파괴하는 감정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덕분입니다.
글 쓰고 책 읽으며 살아갑니다. 저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씁니다. 쓰지 않는 사람에 비해, 저는 이미 살아온 제 삶을 여러 차례 다시 살아 볼 수 있었습니다. 늘 자신을 변호하고 방어하기에 급급했으나, 이제는 잘잘못을 명확하게 분간할 힘이 생겼습니다.
용서란, 모든 것을 무조건 품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칭찬과 반성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용서라 할 수 있겠지요. 과거의 저를 직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회한도 사그라들 수 있습니다.
나를 용서하는 순간에는 가슴도 쿵쾅거리고 눈물도 쏟아집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엉킨 탓이지요. 그러나, 조금만 지나면 마음속 물결이 잔잔해집니다. 이제 큰 태풍이 다 지나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숨소리도 편안해지고 기분도 맑아집니다. 나 자신을 용서하는 그 짧은 행위가 일순간 전혀 다른 삶으로 바뀌도록 만들어줍니다.
이제 저는 과거에 머물지 않습니다. 지난 날 어떤 잘못을 했든, 또 어떤 실수와 좌절을 경험했든, 이제는 전혀 새로운 '나'로 거듭납니다. 지난 시절의 어떤 행위가 질타 받아 마땅하다 하더라도, 결국 그 시점의 그 행위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반성과 성찰은 꼭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머물며 상처를 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입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시간은 지금입니다. 지금의 나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과거의 나를 용서하고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는 최선의 길입니다.
혹시 과거에 저질렀던 또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어떤 일 때문에 아직도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 '나'를 만나고 오길 권합니다. 어쩌면 아직도 울고 있을지도 모를 '나'를 꼬옥 안아주고 나면,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