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웃을 수 있기를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위지안
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의사가 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구나'였다. 당장 목숨이 어떻게 되는 병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나는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의사로부터 암 선고를 받았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갔더니 열흘치 약값이 천 원도 나오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싸냐고 물었더니 이미 암 환자로 등록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약사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오만 생각을 다 했었다. 이제 겨우 살아 보려고 힘을 내는데 암이라니. 참 해도 해도 너무한다. 그래도 당장 죽을병 아니라니 다행이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세계 100대 교수가 되고, 남편과 어린 아들 있는, 불과 서른밖에 되지 않은 여자가 말기암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위지안. 그녀는 죽음 앞에서 흔들리고 고통스러운 시간 보내면서도 덤덤하게 자기 이야기를 적었다. 암 축에 속하지도 않는 병을 선고 받고도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그녀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았다.
모든 글이 "에피소드+메시지"로 구성되어 있다. 보고 듣고 겪은 일을 구체적으로 적고, 그 끝에다 자기만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보탰다. 때로는 자신에게 전하는 말처럼, 때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처럼, 그리고 때로는 고통과 시련 속에 무너져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용기와 희망의 이야기처럼.
나는 여전히 건재하고,
내게는 오늘을 살아갈 이유들이 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또 다른 이유가 생길 것이다.
그런 이유를 하나씩 깨달아가며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더 강한 나로, 거침없이.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위지안
이 책을 매력은 절망의 끝에 서 있는 작가의 유머 감각이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부정하면서 세상을 향한 분노와 증오를 키웠다 하더라도 그 마음 충분히 이해했을 터다. 위지안은 그러지 않았다. 삶이 끝을 향해 조금씩 나아감에도 특유의 위트와 재치를 살려 독자를 웃게 한다.
어릴 적 자신에게 사랑 고백을 한 녀석을 오빠가 본때를 보여주러 갔다가 얼굴이 퉁퉁 붓고 눈 주위에 퍼렇게 멍이 든 채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남여 구분 개념이 모호하다면서 급할 땐 신사 화장실로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착하고 순하기만 했던 친구가 훈남과 연애하는 걸 알고는 자기 남자친구랑 바꾸자는 말을 건네기도 했단다.
웃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말기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사람이 이렇게 톡톡 튀는 글을 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위지안은 이미 삶과 죽음에 관한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는지도. 초월이나 득도 따위 어려운 말도 필요없이, 그저 주어진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냈던 것이 아닐까.
조승리는 자신의 책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에서, "남의 불행을 나의 행복으로 삼지 말라"라고 적었다. 그 문장을 읽으면서 지금껏 내가 얼마나 많은 타인의 불행을 나의 다행으로 여겼던가 반성했었다.
그러나, 위지안의 책에서 나는 또 한 번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돈과 성공, 그리고 명예를 향해 질주하던 위지안을 멈춘 것은 말기암인데 반해, 나의 질주를 멈춘 것은 큰 실패였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라고.
그럼에도 나는 위지안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녀는 끝내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살아갈 이유'를 찾았으며, '오늘 살아갈 권리'를 선택했다.
운명이 나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간다 해도,
결코 빼앗지 못할
단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선택의 권리'일 것이다.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위지안
위지안은 암세포 때문에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매일 새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기쁨과 희열 느끼기도 했다. 비록 끝내 세상을 떠나기는 했으나, 그녀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를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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