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그리고 산책
지난 금요일 오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전날 밤 문장수업에 관한 후기가 오픈채팅방에 차고 넘쳤을 텐데 그 날은 불과 열 개 남짓한 후기밖에 보이질 않았다.
순간 화가 났다. 내가 정성껏 후기 써달라는 말을 깜빡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이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열심히 강의를 했는데 어떻게 이리도 서로 존중하고 헤아리는 마음 없는 것인가.
결심했다. 수강생이 모여 있는 오픈채팅방에 공식 입장을 밝히기로. 왜 다들 이렇게 후기를 우습게 여기는가. 기본과 태도 없이 무슨 글을 쓴다고 그러는가. 단단히 화가 난 뉘앙스로 한바탕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 작정을 한 것이다.
잠시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떤 강의든 마쳤다 하면 한결같이 정성어린 후기를 남겨주는 사람들조차 한 줄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 이건 뭔가 이상해도 한참 이상한 상황이었다.
혹시나 해서 모 작가에게 카톡을 보냈다. 일단 자세한 내용은 통화로 말하기로 하고 지금 소통이 가능한가 확인부터 했다. 잠시 후 그는 곧장 내게 전화했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진지하게 물었다. "왜 후기를 쓰지 않았습니까?"
들려오는 대답은 당황스러웠다. 강의 마치기 무섭게 후기를 길게 남겼는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 나는 어떤 강의든 듣고 나면 꼭 후기 남기는 사람인데. 여태 그걸 모르느냐! 오히려 내 말이 섭섭하게 들린다는 대답이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람들은 후기를 다 남겼다고 하는데, 내 스마트폰에서는 보이질 않는다고. 그랬더니 지인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스마트폰을 껐다 켜세요!"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기계는 껐다 켜면 제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나는 얼른 스마트폰의 전원을 껐고, 3초간 기다렸다가 다시 켰다.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보니 후기가 70개도 넘게 줄줄이 달려 있었다. 아차 싶어 아까 통화했던 모 작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런 문제가 있었던 거라고, 다 해결 되었다고 말했다. 뭐 그럴 수 있는 거라고, 기분 좋게 받아 주었다.
다시 오픈채팅방을 열어 수강생들이 남겨준 후기를 하나씩 차근차근 읽었다. 혈관 속에 노폐물이 싸악 씻겨 가는 듯하고, 피로와 스트레스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에게 수강생들의 후기는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배터리와 같다.
정신도 오작동할 때가 종종 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화가 나고, 사사로운 일에 예민해지며, 누군가를 향한 증오와 분노 때문에 잠 못 이루기도 한다. 분명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데, 정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인데, 대부분 사람은 별 문제 없는 것으로 여기고 지나쳐버린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스마트폰을 한 번씩 껐다 켜야 하는 것처럼, 정신도 한 번씩 껐다 켜야 한다. 정신을 끄는 도구로는 명상이나 산책, 그리고 글쓰기나 독서가 최고다. 온갖 잡념을 없애고, 오직 지금의 나에게만 집중하며, 호흡과 발걸음을 느끼는 순간. 나와 내 삶에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텅 빈 머릿속으로 묵직한 생각 하나만 자리를 잡는다.
머리가 복잡하면 소중한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울수록 자신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놓치게 된다. 열심히 살면서도 무엇을 위해 어떤 가치를 향해 살아가고 있는가 잊게 된다. 몸과 마음은 지치지만, 그에 어울리는 보람과 긍지는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
매일 명상하고 매일 산책하고 매일 글을 쓰거나 책 읽으면 더 없겠지만, 일상에서 그러지 못할 나름의 이유가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꼭 시간을 내야만 한다. 정신을 껐다 켜는 작업은 선택이나 취미가 아니다. 스마트폰의 오류가 일상을 망치듯, 정신의 오류는 인생을 망친다.
자주 피곤하고 감정 상하는 빈도도 잦고 사람들과의 갈등도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느끼는 사람들. 이들은 무슨 다른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정신적 오류를 겪고 있는 거다. 병원에 가도 별 이상 없다고 할 게 분명하다. 스마트폰의 오작동은 그저 껐다 켜기만 하면 해결된다. 지금은 우리 모두 잠시 "껐다 켜야 할 때"이다.
사실, 스마트폰보다 우리가 더 과부하에 걸려 있다. 종일 잠시도 틈 없이 온갖 정보가 주입되고, 매 순간 뭔가 판단하고 분별해야 하며, 나 자신 말고도 챙기고 신경 써야 할 대상이 한두 가지 아니다. 천하무적 슈퍼 돌연변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하루를 매일 무사히(?) 겪어낼 수 있겠는가.
잠시 껐다 켜기만 해도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오랜 시간 정신적 오류를 겪은 사람은 조금 더 긴 시간 껐다 켜는 작업을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번에 내가 스마트폰을 그대로 방치했더라면,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 정보를 다 잃고 새 폰으로 바꾸는 상황까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폰이야 바꾸면 그만이지만, 우리 정신을 새 것으로 갈아 끼울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