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강박
모든 일을 내가 직접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내가 일을 제일 많이 해야 인정받는다 믿었고, 집안일도 내가 척척 다 해야 가족으로부터 존재감을 상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재 내가 운영하는 [자이언트 북 컨설팅]도 마찬가지다. 수강생 모집부터 제목과 목차 기획, 원고 검토, 투고 안내, 강의 자료 제작, 강의까지. 이 모든 걸 지난 10년 동안 나 혼자서 다 했다.
힘들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줄 알았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 없어도 누군가 뭔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힘들다는 말은 곧 나의 능력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꼴이라 여겼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온몸에 힘이 쭈욱 빠지는 날에도 식구들이 물으면 괜찮다고만 대답했다. 실제로 나는,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죽을 지경이었다.
수강생들이 전화나 카톡이나 혹은 블로그 댓글로 뭔가 질문을 하면 최대한 빨리 답변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살았다. 오히려 그들은 "천천히 답 주셔도 됩니다, 급하지 않아요."라고까지 말했으나, 정작 나는 늘 '급하게' 답변을 처리하려 애썼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 대신 일을 처리할 거라고 생각하고. 힘들 땐 그냥 힘들다고 말하고. 누가 어떤 질문을 해도 내 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대답하고. 그렇게 살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문득 드는 생각. 아마 그렇게 살았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 같다는. 나는 나 자신을 대단하고 훌륭하고 멋진 존재여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서 스스로를 옭아매어 살았다. 큰 실패를 겪고 난 후 내 삶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놔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먹고 살 만큼 정상적인 삶의 위치에 이르렀으나, 습관이 된 강박은 여전히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모든 일은 내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고, 여간해선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고, 가족이든 누구든 뭔가 물어 보면 운전중에 차를 멈춰서라도 답변을 해야 조바심과 불안증이 사라진다.
나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증상인가 싶어 주변을 돌아봤더니 나와 비슷한 현상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사람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느긋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도 몇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삶을 '어떤 위치'까지 올려놓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강하게 몰아붙이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신경 통증과 척추 디스크로 병원을 찾았을 때, 나이 지긋해 보이는 의사가 내게 했던 첫 번째 조언은 이거였다. "숨 좀 크게 쉬세요."
마치 허리띠를 있는 대로 졸라 매고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처럼 호흡이 얕았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숨이라는데, 나는 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살아왔던 거다. 모든 일을 내가 직접 해야 한다는 강박, 힘들다는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 그리고 질문에는 무조건 빨리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 숨을 크게 쉴 수가 없었던 거다.
나이 오십 넘었다. 인생 절반 달려왔다. 힘 좋은 동물도 오십 년 일 부리면 쓰러지게 마련이고, 성능 좋은 기계도 오십 년 사용하면 녹스는 게 당연하다. 이젠 쉴 때가 되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을 바꾸는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적어도 하루 한 시간은 가져야 한다. 이것이 24시간 쉬지 않고 열심히 사는 것보다 훨씬 큰 성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타인을 향한 평가나 분노 혹은 증오 따위 감정을 내려놓는 거다. 내가 무슨 남을 비방하거나 질투나 시샘 때문에 몸서리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다만, 매 순간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는 건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글감으로 건질까 싶은 욕심에 시작된 습관이긴 한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나쳐 다른 사람 자체에 너무 많은 관심과 신경을 곤두세운 채 산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그냥 턱 내려놓아야 내가 산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은, 세상 무엇보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우는 거다. 그 동안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살긴 했다. 문제는, 생각만 그리 하고 실천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쉴 때는 쉬어야 하고, 챙길 땐 챙겨야 한다. "나 좀 챙겨줘!"라고 비명을 지를 때까지 나는 나를 방치해 왔다. 이젠 나와의 시간을 많이 가질 작정이다.
열심히 살아온 세월에 후회는 없다. 허나, 내일 당장 내 삶이 끝난다면 아쉽고 안타깝고 허탈하고 허무한 느낌 지울 수 없을 터다. 그러지 않기로 했다. 언제 내 삶이 저문다 하더라도 미련 갖지 않을, 나 자신을 돌보는 인생 지금부터 시작한다.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진즉에 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