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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만족하지 못하는 순간

결핍과 풍요의 사고방식에 대하여

by 글장이


사람으로부터 상처 받았을 때 고통스러웠다. 전 재산을 잃고 세상 뒷편으로 튕겨져 나갔을 때 힘들었다. 내가 바라는 인생 향해 열심히 살았지만,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아프고 괴로웠다.


지난 시절 나는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웠던가 고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통의 이유가 많고 다양했지만, 모두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다. 내가 아프고 괴로웠던 이유는 모두 '그 순간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모한 사업을 벌인 것도 만족하지 못한 탓이고, 사람들과 갈등 일으킨 것도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성공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던 탓에 늘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족하지 못한 모든 순간에 나는 고통스러웠다.


친구가 사무실 이전해다며 한 번 놀러 오라고 해서 들른 적 있었다. 넓고 큰 사무실 한 쪽에 유리로 된 벽이 있었고, 그 안쪽에 친구가 사장님처럼 앉아 있었다. 친구가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저 멀리 산과 들이 한눈에 들어와 가슴이 탁 트였다.


사무실 이전으로 손님을 '대접'하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자기 사무실을 '자랑'하고 싶었던 거란 사실을 누가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나는 친구의 장단에 잘 맞춰 주었다. "우와! 끝내준다! 멋지다! 너 진짜 대단하다!"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조금 전 봤던 넓고 큰 사무실에 비하면 여덟 평짜리 원룸 사무실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 몬스터 캔 하나를 따서 한꺼번에 절반을 삼켰다. 탄산이 목을 찔렀다.


화장실 가기 위해 멀리 복도 지날 필요 없다. 에어컨, 보일러 모두 내가 마음 대로 조작한다. 작지만 부엌과 냉장고까지 있어서 여름이고 겨울이고 간식도 편하게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앉은 자리 오른쪽에 창문이 있어서 아무 때나 열고 바람이든 비든 만지고 누릴 수 있다.


감옥에서 글 썼고, 집에서는 책상 하나 없어서 앉은뱅이 자세로 구닥다리 노트북에 꾸역꾸역 손가락 눌러가며 글 썼다. 근사한 사무실에 최신 노트북에 더 없을 만큼 훌륭한 줌 강의 설비 장치들까지.


친구 사무실 아무리 근사하고 멋져도 내 사무실에 비할 수 없다. 지금 내가 글 쓰고 책 읽고 공부하고 강의하는 이 사무실은 천만금을 준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공간이다. 그 옛날, 나는 이런 마음으로 살았어야 했다.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고통 받게 되어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게 마련이다. 돈도 더 많았으면 좋겠고, 인기도 더 많았으면 좋겠고, 인정과 칭찬도 더 많이 받길 원하며,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서 더 크고 멋진 성과 내길 기대한다. 인간 본성인 확장에 어울리는 바람이다.


그러나, 꼭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부족하고 모자라고 무슨 하자가 있어서 '고쳐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장난 존재라서 뜯어고쳐야 하는 게 아니라,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 존재이지만 더 나아지고 좋아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거다.


어떤 노력을 기울이든 지금에 만족한 상태에서 출발해야 한다. 환경이나 조건 따위는 부족하고 초라할 수 있으나, 나 자신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완벽하고 완전하다. 문제는 언제나 밖에 있을 뿐, 내 안에는 어떤 하자도 없다는 사실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고통 없이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늘 '내'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좀 더 잘하면, 인생도 더 좋아질 거라 믿었다. 아니었다. 내가 틀렸다. '나'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나 조건이 다소 부족하고 모자랐을 뿐.


'나'를 변화시키면 세상도 인생도 변한다는 말 들어 본 적 있을 거다. 그 말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변화시키란 뜻이 아니다. 지금도 괜찮지만, 한 계단 더 올라서서 보면 세상도 인생도 다르게 보인다는 말이다.


어떤 도전이나 변화를 시도하든, 지금의 '나'도 얼마든지 괜찮다는 사고방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하면, 저 멀리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과 현실의 모습 사이 간극이 커져서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고통은 불만족에서 비롯된다. 돈이든 일이든 사람이든 뭔가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우리 마음속에는 '결핍'이 자리잡는다. 똑같은 바람으로 노력 기울여도, 결핍 장착된 사람의 성과는 항상 낮고 불안하게 마련이다.


파산하고 감옥에 갔던 순간. 나는 심지어 그 시절에도 만족할 수 있어야 했다. '지금의 삶'도 괜찮다고 느껴야 했다. 얼마든지 더 나빠질 수 있었다. 형량이 더 길어질 수도 있었고, 채권자들 모두가 고소했을 수도 있으며, 가족 상황도 더 나빠질 수 있었다. 그러니, 그만 한 정도로 죗값 치를 수 있게 된 것만도 감사했어야 마땅하다.


이쯤되면, 만족하지 못할 상황 뭐가 있겠는가. 더 힘들고 아픈 순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허나, 자신이 지금 괴로운 순간에 처해 있다 하여 자꾸만 괴롭다 힘들다 외친들 그게 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더 나빠지지 않아 이것만으로 충분히 다행이라 여기고, 그런 '풍요'의 사고방식으로 한 걸음씩 전진해야 인생이고 뭐고 다 뒤집어 엎을 수가 있는 거다.


글쓰기도 똑같다. 못 쓴다, 힘들다, 어렵다 불평하고 하소연하면서 질질 끌려다니듯 쓰는 글은 독자에게 아무런 희망도 용기도 줄 수 없다. 그래도 이 만하니 다행이라 여기도, 조금 더 좋아지고 나아지기 위해 쓴다고 생각해야 글도 삶도 좋아진다.


항상 생각이 먼저다. 어떤 생각으로 임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시간 똑같은 노력에도 성과가 달라진다. 어차피 고생해야 할 거면, 이왕이면 성과 크게 좋게 나오는 게 낫지 않겠는가. '풍요'의 사고방식은 이래서 필요하다.


만날 때마다 입 툭 튀어나와 불평과 불만 쏟아내는 사람 있다. 표정 자체가 어둡고 우울하다. 어제 누가 죽은 것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그 사람 어두운 표정으로 불평 내뱉은 지가 벌써 3년도 넘었다는 사실. 내가 그 친구 만난 지 3년 넘었고, 만날 때부터 그랬으니, 실제로는 더 오래 되었을지도 모른다. '결핍'의 사고방식으로는 인생 절대 좋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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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하지 못하는 순간이 고통이다. 생각 바꿔야 한다. 지금도 좋다! 앞으로 더 좋아질 거다! 최고다 내 인생!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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