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가치와 존재 이유
며칠 전, 심하게 아팠던 적 있습니다. 급체를 했는지, 메스껍고 더부룩하고 토하고 식은땀 흘렸지요. 온몸에 힘이 빠지고 숨 쉬기도 힘들었습니다. 약을 먹고 체기가 내려가 겨우 살 만했습니다. 이틀쯤 앓고 나니까 어느 정도 나은 듯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기력이 빠져 의욕이 없었습니다.
몸이 아프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잘 해 오던 일도 괜히 자신이 없어지고,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사실에 스트레스 받기도 합니다. 일을 뒤로 미루게 되고, 일상 루틴이 깨져 무기력에 빠지는 등 그야말로 엉망이 되곤 하지요.
정규과정과 특강, 그리고 문장수업까지 총 3개의 강의가 연달아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수강생들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그들은 간절합니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요. 죽을병도 아니고, 그들을 외면한 채 그냥 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막노동 하던 시절에 돼지 축사에서 일한 적 있습니다. 화재 때문에 돼지가 몽땅 죽어버린 현장이었죠.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지저분합니다. 당일 아침 현장에 도착한 저는 처참한 광경과 악취 때문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일당을 포기하고 그냥 집에 가려 했습니다. 아무리 막노동 잡부로 일한다 하지만, 돈 몇 푼 받으려고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함께 일하러 갔던 동료와 발길을 돌리려는데, 맨땅에 쪼르려 멍하게 앉아 있는 축사 주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험도 해약했고, 가진 돈도 없고, 마땅히 일꾼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망연자실한 저 표정. 과거 사업에 실패했을 때의 제 모습이 그대로 떠올랐지요.
돕기로 했습니다. 팔 걷어붙이고 축사 안으로 들어가 돼지 덩어리(?)를 끄집어내 땅에 파묻는 작업을 했습니다. 돈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악취도 견딜 만했습니다. 축사 주인이 어떻게든 살아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다섯 식구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지요. 사소한 일로 툭탁거리기 일쑤이고, 때로 큰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아무리 별 일 아니라 하더라도, 식구끼리 갈등 생기면 마음 심란합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소화도 잘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제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 리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심란한 상태라 하더라도 상담 전화가 오면 받아야 합니다. 내 코가 석자다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상대가 털어놓는 고민을 듣다 보면 어떻게든 그 고민부터 먼저 해결해드리고 싶다는 바람이 생깁니다.
신기한 것은, 다른 사람의 고민 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노력하는 동안 제 걱정과 근심은 말끔히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생의 실패는 남에게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 데일 카네기
돌이켜보면, 오직 내 자신의 성공과 입지에만 관심 갖고 살았던 시절에 인생 제대로 풀린 적 한 번도 없었습니다.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조급했지요. 하나를 얻으면 또 다른 하나를 얻고자 했습니다. 만족을 모르고 기쁨을 모르고 행복을 몰랐습니다.
모두 잃고 난 후에, 과거 내 모습과 정반대로 살기만 하면 되겠다 싶었지요. 다른 사람을 돕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처음엔 잘 안 됩니다. 어색하고 힘듭니다. 화도 나도 짜증도 생깁니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싶지요. 내 삶이 엉망인데 돕긴 뭘 도와? 이런 생각이 쉴 새 없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시늉만 했습니다. 돕는 척만 했습니다. 타인을 위하고 그들을 돕는 인생. 제가 가진 모든 가식과 위선을 모아 "그런 척"하며 살았던 겁니다.
실제로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얼마나 실속 있게 도왔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 건 중요하지도 않고요. 진정한 의미는 뭐냐 하면요. 다른 사람 위하고 챙기는 척 살다 보니, 어느 새 제가 정말로 남을 돕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제 마음이, 제 글이, 제 강의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환희와 희열은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말, 이럴 때 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자신의 환자들에게 14일 처방전을 주었다 합니다. "이 처방대로 하면 14일 만에 반드시 완쾌됩니다. 그것은 매일 어떻게 하면 남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일이죠."
우리가 무슨 위대한 성인도 아니고, 희생과 헌신까지 강조하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의 근심과 상처와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했으니까요.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중독자, 막노동꾼...... 생각만 해도 끔찍한 현실이었지요. 만약 제가 제 자신의 인생에만 골몰했더라면, 아마 지금쯤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 만큼 힘들고 아팠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저는 '다른 사람 위하는 척' 살아온 덕분에 두 번째 인생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 도우며 살기 위해서는 할 일이 많습니다. 정신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고민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는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세상에는 나보다 힘든 사람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그들을 돕다 보면, 자신의 상황도 점점 나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신발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 해롤드 애보트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것은 남을 돕는 행위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강의를 할 때마다, 혼신을 다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타인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글도 쓰고 강의도 하면, 그 순간순간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지 모릅니다.
멋있어서 돕는 것도 아니고, 의무이기 때문에 돕는 것도 아니고, 도덕적 완성을 위해 돕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좋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쁘고, 내가 만족스럽고, 내 존재 가치를 느끼고,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남에게 선을 행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자신과 타인 모두를 위하는 행위라는 뜻이지요.
혹시 지금 힘든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달리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주변에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이 없는지 유심히 살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러고나서 자신이 도와줄 만한 일이 뭐 없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이왕이면 당장!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 돕는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