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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화가 난 게 아니라 두려운 것이다

감정의 실체

by 글장이


막노동 현장에서 일하면서 심하게 화를 낸 적 있습니다. 철거 작업을 할 때였는데요. 천장을 부수고 잔해를 치우는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위험하지요. 먼지도 많아서 호흡기 질환에 걸리기도 하는 그런 일입니다. 마스크를 두 겹으로 끼고 안전모까지 쓴 채로 한여름 무더위에 사방 문 다 닫고 작업하다 보면 가만 있어도 성질이 돋습니다.


그 와중에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자꾸만 잔소리를 해대서 크게 한바탕 싸움이 난 것이지요. 똑같이 일당 받고 일하는 주제에 무슨 팀장처럼 구는 그 양반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냥 닥치고 일만 하면 좋겠는데, 그놈의 주둥아리가 잠시도 쉬질 않는 거였지요.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에 알았습니다. 저는 그 작업이 힘들어서 짜증을 낸 것도 아니었고, 그 사람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화를 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대체 왜 이런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육체노동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저 자신과 앞으로의 인생이 불투명하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웠던 겁니다.


화가 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러나, 화를 내는 건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화가 난다고 해서 아무한테나 화를 내면, 관계에 문제가 생길 뿐만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마구 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고등학교 때 한 살 많은 여자친구와 사귀었던 적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를 무지하게 좋아했는데, 그 친구는 저를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았지요. 여자친구는 허구한 날 다른 남자들과 어울렸고, 저와의 약속이 있는 날에도 갑자기 다른 약속 생겼다며 그 쪽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화도 내고 싸우기도 하고 엉망진창으로 관계를 지속하다가 결국 헤어지고 말았지요. 저는 그 여자친구에게 화가 났던 게 아닙니다. 혹시나 제가 좋아하는 그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웠던 거지요. 지성과 외모 멋진 남자들 수두룩한데, 저는 아직 학생 신분이었으니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던 겁니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한국어는 약 400여종이라 합니다. 그 중에서 부정적인 감정 표현어가 무려 72퍼센트라 하네요. 우리는 아주 쉽게 '화가 난다'라고 표현하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감정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두렵다, 서운하다, 섭섭하다, 불쾌하다, 실망스럽다, 아쉽다, 배신감 느낀다, 절망적이다, 질투 난다, 시기심 생긴다, 초조하다, 불안하다....


단순히 '화가 난다'라고만 표현하면, 그 감정의 실체와 원인을 제대로 알기 힘듭니다. 원인을 모르면 해결도 불가능하지요. 화가 날 때는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말 자주 들어 보았을 겁니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진짜 감정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라는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화가 아니라 두려움이라면, 그 두려움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가 확인하고, 이후로 더 이상 두렵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해야 합니다. 막노동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이른 새벽과 늦은 밤 매일 책 읽고 글 썼습니다. 여자친구를 잃을까 봐 두려웠던 저는, 제가 먼저 이별을 선언함으로써 같잖은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요.


최근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화가 많이 났습니다.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저는 가족에게 서운함을 느꼈던 것이고요. 둘째, 제가 가진 누군가를 빼앗길까 봐 두려웠던 겁니다. 셋째,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제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했던 겁니다.


실체를 안다고 해서 금세 화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후로 또 화가 날 때 속으로 '이건 이런 감정이야'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됩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어쨌든 좋아진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화가 난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람이 하루만 살아도 온갖 스트레스 받게 되는데 어떻게 화 없이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다만, 화의 진실과 실체를 제대로 알고, 원인을 규명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강구하는 바람직한 태도로 화를 대해야 한다는 점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화가 많아 화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저를 화 나게 만드는 사람들은 화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저와 똑같이 화 내고 욕했으면서, 저한테만 "왜 그렇게 화를 많이 내고 욕을 하느냐"라고 따집니다. 니도 똑같다 임마! 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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