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1시 30분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3층 입원실로 바로 올라갔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짐도 다 싸놓았고, 옷도 갈아입은 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니다 괜찮다 하시면서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나 봅니다.
보행기를 잡고 걷는 모습이 한결 가벼워 보입니다. 의사는 수술 자체도 잘 되었다고 하고, 엑스레이와 MRI, 그리고 피 검사 결과까지 모두 정상이라고 했습니다. 척추와 골반이 워낙 심하게 어그러진 탓에 다리에 힘이 많이 빠졌을 거라고, 그래서 부지런히 운동하여 근력을 붙여야 한다는 당부를 덧붙였습니다.
1층 주차장으로 나왔습니다. 차가 있는 곳까지 걸었습니다. "날씨가 많이 덥다." 병원에만 계셔서 이미 한여름이 온 줄 몰랐던 모양입니다. 차에 올라 집으로 향합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묻습니다. "병원비 많이 나왔지? 얼마 나왔냐?"
대학병원에서 1차 수술 받고 퇴원하던 날, 아파트 주차장에서 집까지 불과 5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를 30분 넘게 걸었었지요. 이번에는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보행기를 짚어야 했지만, 수술 전과 비교하면 한결 편안한 걸음이었습니다.
매일 무슨 볼 일로 낮에 집을 비우시던 아버지가 가장 먼저 어머니를 맞이합니다. "고생했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오늘 어머니 퇴원한다는 말을 듣고는, 아버지는 종일 거실을 닦고 베란다에 물을 뿌리며 청소를 하셨습니다. 정육점에 가서 불고기도 잔뜩 사오셨고요.
아내가 참외를 깎아 접시에 담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시원한 과일 먹으며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참전용사 후담처럼 쉴 새 없이 꺼내 놓았습니다.
저녁 때가 다 되어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왔습니다. 가방도 내려놓지 않은 채로 할머니 방으로 들어갑니다. 어머니 목소리가 커집니다. 10년만에 손주 만나는 할머니 같습니다. 비로소 다섯 식구 완전체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매 순간 되새김질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하지요.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착하는 순간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입원하고 수술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어야 하고요. 퇴원하고 회복하는 단계에서도 촐싹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의 평온은 평정심에서 비롯됩니다.
오래 전, 사업에 실패하고 절망했을 때 저는 모든 일을 손에서 놓은 채 술만 퍼마셨습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 속으로 상황이 달라지길 바라기만 했었지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네, 맞습니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속상하면 하지 않습니다. 기분 나쁘면 다 때려치웁니다. 스트레스 받으면 포기를 하고요.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다음으로 미룹니다. 짜증나면 그만둡니다. 날씨가 더우면 의욕이 없다 하고, 날씨가 추우면 너무 춥다 난리를 피우고, 다시 따뜻한 곳에 가면 잠을 잡니다.
우리에겐 하지 않을 이유와 핑계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번에 어머니 두 차례 걸쳐 큰 수술을 받았는데요. 글쎄요. 보통일 아니었으니까, 저는 이 일을 이유삼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요. 마음이 심란하다, 걱정이 많다, 심경이 복잡하다, 병원에서 간병하느라 지친다 등의 이유로 말이지요.
4월 중순부터 어제까지, 모든 일정과 업무 하나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매주 세 차례 정규과정, 주 1회 문장수업, 특강, 일기, 독서와 독서노트 작성, 블로그 포스팅, 습작, 제 원고 마무리, 수강생 원고 검토 및 계약, 거기다 어머니 간병까지. 대단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어진 일을 한다는 마음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6년 6개월 동안 매일 블로그 포스팅 발행했습니다. 약 5천개의 글이 게시되어 있지요. 545일째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주 1회 진행하는 문장수업이 100회를 맞이했습니다. 어제, 자이언트에서 500호 작가가 탄생했고요.
재능? 비법? 묘법? 지름길? 쉽고 빠른 방법? 저는 그딴 거 모릅니다. 인생을 통째로 지불하고서야 배울 수 있습니다. 연습과 반복과 꾸준함으로 쌓아올린 누적량이야말로 우리 삶의 최고 가치라는 사실을 말이지요.
결단과 각오도 너무 쉽게 하고, 중도 포기도 우습게 여깁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을 어찌 그리 당당하게 하는 지 놀라울 지경입니다.
그럭저럭 견딜 만할 때는 누구나 합니다. 힘들고 아플 때, 도저히 못하겠다 싶을 때, 그만 주저앉고 싶을 때, 그 때 이 꽉 깨물고 한 걸음 나아가야 승부를 지을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핑계와 변명은 기꺼이 받아주되, 자신을 변호하려는 핑계와 변명은 가차없이 잘라낼 수 있어야 합니다.
500호 작가를 배출했지만, 저는 오늘 또 변함없이 강의합니다. 어머니 퇴원하셨지만, 들뜨지 않고 차분히 운동시켜드립니다. 어제의 상처와 아픔을 되새김하지 말고, 어제까지의 영광에 집착하지도 말고, 그저 오늘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하면, 탑을 쌓을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