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날이 있다

by 글장이


아침부터 많은 일이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난생 처음 정성 담아 보았는데, 그 정성 아무 의미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상처 가득 안고 돌아오는 길에, 부산 작은아버지 재수술 소식을 들었다. 돈이 없어 수술하지 못할 지경이란 얘기까지.


사무실 도착했는데,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통증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아플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쉽게 떠올린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려는데, 주말이라 외출하지 않는 사람 많은지 가로주차 통행 막아놓은 차가 한두 대가 아니다. 멀쩡히 빈 자리 다 놔두고 집으로 올라가는 통로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자리에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세탁소에 맡겨놓은 자켓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다음 주 월요일 되어야 찾을 수 있다 한다.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도로 공사를 한답시고 여기저기 다 들쑤셔 놔서 먼지며 흙이며 엉망이다. 건물 2층 사용자가 무슨 똘끼가 있는지 복도에 앉아 담배를 피웠나 본데, 그 문제로 사무실 빌라 통째로 전쟁 난 듯 소란스럽다.


살다 보면 이런 날 있다. 나의 진심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날. 친척으로부터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들. 딱히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어딘가 심하게 아픈 날. 그런 날에 줄줄이 이어지는 머피의 법칙들.


이런 날 담배 피우면 담뱃불이 옷에 튄다. 이런 날 청소하면 청소기에 발가락 찧는다. 이런 날 샤워하면 미끄러진다. 이런 날 공부하면 집중할 수 없다. 이런 날 친구랑 통화하면 싸운다. 살다 보면, 이런 날이 있다.


중요한 건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날 억지로 무언가를 바로잡으려 애쓰다간 에너지만 축나고 속만 상한다. 그냥 '어디까지 얼마나 안 좋아지는지 보자'라는 생각으로 마음 내려놓고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누적된 내 경험으로 만든 원칙이다.


오늘은 '이런 날'로 보내버린다. 내일은 전혀 다른 원래의 날로 만난다. 그러면 아무 일 없다. 삐걱거리는 오늘을 바로잡으려 애쓰다가 몸도 마음도 상하면 내일뿐 아니라 몇 날 며칠 '제대로 풀리지 않는 날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사람도 마찬가지. 살다 보면 별별 인간 다 만난게 마련이다. 어쩌다 희한한 인간 만났을 땐, 그와 맞붙어 이기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오늘은 그냥 그런 인간을 만난 날이구나 하고 넘겨야만, 내일 다시 원래 내 소중한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다.


일도 다르지 않다. 살다 보면 유난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평소와 똑같이 일했는데도 결과가 시원찮거나, 하필이면 상사가 '성과 엉망인 순간의 나'를 주의깊게 본다거나, 동료들과의 협업이 원활하지 않는 그런 때.


이런 때도 그냥 '이런 날 있구나' 하고 넘겨야 한다. 그래야 다음 날 다시 원래의 씩씩하게 일 잘하는 나로 돌아갈 수 있다. 괜히 일 풀리지 않는답시고 짜증 부리고 속상해하면, 다음 날부터 제법 오랜 시간 '일 못하는 나'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글도 똑같다. 쓰다 보면 엉망인 날 있다. 그런 엉망인 날 꽤 자주 만나기도 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거나, 다 썼는데도 엉망인 날. 그런 날은 덤덤히 그냥 넘겨야 한다. 난 왜 이렇게 글을 못 쓸까, 난 재능이 없나 봐, 난 자격이 없어.... 이렇게 자책하고 자괴하면, 다음 날부터 오랫동안 글 못 쓰는 나로 살아야 한다.


그런 날이 있다.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리지 않고, 누구를 만나도 문제가 생기며, 가만히 있어도 사고가 터지는 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 사람 누구나 그런 날을 만난다. 조금 만나는 사람도 있고, 많이 만나는 사람도 있다. 그냥 그런 거다.


감기 한 번 걸리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건강 좀 챙겨야겠다는. 멀쩡하게 살 때는 건강 생각 미처 못하는데, 몸 어딘가 말썽이 생기면 그제야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다.


신이 우리 삶에 태클을 거는 거다. 뭔가 문제를 일으키고, 삐걱거리게 만들고, 감정을 뒤흔든다. 일상의 나사를 제대로 조으고,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짚고 넘어가라는 신호다. 심호흡 크게 하고, '그런 날'을 그냥 넘기는 여유와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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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 좀 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더니, 친구들과 1박 2일 서울로 놀러간 아들이 내 면도기를 들고 가버렸다. 멀쩡한 지 면도기 두고 하필이면 내 걸 가져갔다. 그냥 못 넘어간다. 오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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