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선명하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촉을 세우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글감과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에서 퍼뜩 떠오르는 영감 같은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런 경우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로또 복권 당첨을 기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겠지요.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느끼는가? 그래서 어떤 메시지를 도출할 수 있는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에 촉을 곤두세우고 관심을 가져야만 좋은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제대로 보지 못하면 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잘 듣지 않으면 쓰기 힘들다는 뜻이죠. 온몸으로 체험하고 온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때, 술에 절어 살았습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난 후에도 저는 여전히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았다는 자기 변명과 핑계를 대긴 했지만, 그런 변명과 핑계를 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취해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2019년 9월 8일. 금주를 선언하고, 지금까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술을 끊은 후에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잘 보인다고 말이죠. 네, 맞습니다. 잘 보입니다. 선명하게 보입니다. 명확하게 보입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주름살도 보이고, 누나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는 사실도 보이고, 아들의 얼굴이 남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도 보입니다.
잘 보이기 시작한 후로, 글을 쓰는 시간이 더 행복해졌습니다.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설레고 즐겁습니다. 취하지 않으면 선명하게 보입니다.
술에만 취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취합니다. 자기 성과에 취하고, 자기 기만에 취하고, 자기 비하에 취하고, 불평과 불만에 취하고, 욕심과 이기주의에 취하고, 내가 옳다는 자만과 오만에 취합니다.
지난 시간 동안 이뤄낸 성과에 취해 있으면 오늘과 지금을 허투루 살게 됩니다. 더 누리고 싶고 더 즐기고 싶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가 귓가에 울려 다 끝났음에도 여전히 흥분된 상태를 주체하지 못합니다. 저도 그런 자아 도취 때문에 소중한 일상을 놓친 적이 많습니다.
성과에 취하지 않으면 오늘이 보입니다. 지금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주어진 몫이 무엇이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지요. 결과적으로 더 많은 성과를 창출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비난에 취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실수와 실패를 떠올리며 자꾸만 고개를 숙이는 것이죠. 가슴이 아픕니다. 후회가 되고 원망과 분노 따위 감정이 계속 스물거립니다. 과거 때문에 발목 잡힌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거겠지요.
돌이킬 수 없고,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만 과거를 회상하며 아파합니다. 취해서 그렇습니다. 자기 비하와 비난에 취한 겁니다. 빨리 깨어나야 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지요.
지금은 과거의 실수와 실패를 돌이켜 후회하고 원항하지만, 나중에는 지금의 후회와 원망을 후회하고 원망하게 될 겁니다. 악순환만 반복될 뿐입니다.
자기 비하에 취하지 않으면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에 세울 수 있습니다. 인생 모든 순간을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평온하고 일관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지요. 그러니 글을 쓰기가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감정보다는 팩트를 주로 써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취하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분노에 취하고, 질투와 시샘에 취하고, 좌절과 절망에 취합니다. 술에 취해 본 사람은 잘 알 겁니다. 사람들이 왜 자꾸만 취하는지 말이죠. 무엇에든 취하면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도망입니다. 회피입니다.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뿅 갈 수 있으니까 자꾸만 취하는 것입니다.
술에 절어 떡이 된 사람 본 적 있지요? 어떻습니까? 볼 만 하던가요? 자신의 가족이 그런 모습으로 매일을 살아간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겠지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멀쩡하게 되돌리고 싶을 겁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냉철해야 합니다. 취하게 그냥 두지 맙시다. 정신을 깨우고 냉수를 마시고 볼을 때려서라도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선명하게 보고, 제대로 듣고, 모든 감각이 살아 움직이듯 체험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이고, 제대로 살면 좋은 글도 쓸 수가 있는 거겠지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절대 취하지 맙시다. 맨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곁에 있는 가족 얼굴,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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