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매일 써야지
글은 많다. 책도 많다. 쏟아진다. 고르기 힘들 정도다. 글마다 책마다 좋은 말들이 가득하다. 밑줄 긋기 바쁘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어떤 마음 가져야 할 지, 이럴 땐 어떻게, 저럴 땐 어떻게. 인생 백과 사전이 곳곳에 널려 있다. 거기다 인터넷과 유튜브와 SNS까지.
나는 글을 쓴다. 제법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중이다. 공부도 하고 연습도 하고 썼다 지우길 반복하기도 한다. 여섯 권의 책을 출간했고, 470호 작가도 배출했다. 이 정도면 경력 화려하다. 그럼에도 글 쓰기가 두렵고 막막하다. 쓸 때마다 똑같다.
수많은 글과 책 앞에서 내 글은 과연 몇 등쯤 될까.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면, 그의 가슴에 남기나 할까. 아니, 내가 공들인 만큼 그도 정성껏 읽어주기나 할까.
세상은 크고 넓다. 내 글은 작고 초라하다.
일기를 쓰라고 권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끝이다. 팀 페리스가 모닝 저널을 추천했다. 다들 광분했다. 밑줄 긋고 난리다.
같은 말인데. 내가 먼저 했는데. 내 글은 묻힌다. '위대한 인물'들은 별 생각없이 내뱉는 말조차 명언이 된다. 영향력의 차이다. 지위의 차이며 계층의 차별이다. 내가 먼저 말한 거라고 우겨 봐야 사람들은 피식 웃고 말 터다.
그럼에도 나는 또 글을 쓰고 있다. 나보다 경험 부족한 이들이, 이제 막 쓰기 시작한 이들이, 몇 권의 책을 냈지만 아직도 작가로서의 삶에 확신이 서지 않는 이들이, 내 작은 글을 읽고서 힘을 낼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작은 글을 쓰는 이유는 작은 사람들을 위해서다. 세상에는 작은 존재가 많기 때문이다. 살아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시절, 누군가 나를 좀 봐줬으면 싶었다. 이리도 열심히 살고 있으니, 이제 좀 알아봐달라 외치고 싶었다.
그 시절 나와 같은 심정으로, 오늘도 죽기살기로 버텨내고 있는 이들에게 내 작은 글이 위로가 되었으면 싶다.
헤밍웨이가 될 자신 없다. 하루키가 될 마음도 없다. 조앤 롤링? 엄두조차 나질 않는다.
세상 끝에 섰을 때, 당신 글이 그리워요 말해주는 이가 백 명쯤 있다면, 글쎄, 웃으며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아침에. 어머니와 아내가 다퉜다. 꽤 큰 소리가 났다. 저녁에. 어머니와 아내가 풀었다. 마주 보며 웃고 난리다. 큰 싸움인 줄 알았다. 작은 소동이었다.
가족간 생기는 불화는 당시에는 큰 일이다. 지나고 나면 흔적조차 사라진다. 결국은 작은 일에 불과하다. 이 작은 일이 사랑을 키운다. 더 이해하고, 더 안아주고, 더 받아들인다. 작은 일의 가치다.
내 작은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고, 누군가는 읽다가 말고, 또 누군가는 험담도 하겠지. 하지만, 어쩌다 한 사람이라도 밑줄 그으며 두 번 생각해준다면, 아! 그 감동과 환희, 어쩔 것이냐!
글 쓰다가 살았다. 글 써서 살았다. 내게 글은 생명이자 신앙이다. 잘 쓴다? 못 쓴다? 그런 거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잘 써도 쓸 테고 못 써도 계속 쓸 테니까.
타인을 돕는 행위. 거창하게 강의한다. 이상이다.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같은 말을 천 번쯤 되풀이한다. 내가 그랬으니까. 누군가의 글과 책을 읽고 다시 살겠다 마음 먹었으니. 혹시 내 글을 읽고 한 번 살아보겠다 결심하는 이가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부정적인 글 쓰려고 시도해 본 적 있다. 잘 안 되더라. 마무리는 항상 좋은 말로. 그렇게 끝났다. 글은 우리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그래서 글은 참하다. 내 마음도 닦아주고, 그 사람 눈도 밝혀준다.
야구장 조명처럼 휘황찬란한 빛도 도움이 되겠지만, 호롱불 하나만 켜도 밤길 걷는 데에는 더 없다.
한 번씩 묘비명을 떠올려 본다. 작은 글 쓰다가 잠든 사람. 멋있다. 마음에 든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토니 라빈스의 글은 전 세계 사람들 마음에 닿는다. 작은 글은 겨우 한 사람 정도. 그래서 많이 쓴다. 작은 글 열 개면 열 사람. 백 편이면 백 명. 밤 11시 58분인데. 글 쓰고 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