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를 만나는 시간
불쾌한 말 듣고 살았다. 직장 생활 할 때 주변 사람들이 하던 말. 아직도 생생하다.
은대씨는 사람이 좀 불편해.
은대 선배는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려워요.
은대씨, 좀 편안하게 해 주면 안 돼?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뭘 어쨌길래. 딱히 인상을 쓴 것도 아니고, 말을 못되게 한 것도 아니고, 시비를 걸었던 것도 아닌데.
바꾸려고 노력한 적도 없고, 굳이 스트레스 받은 적도 없다. 생긴대로 사는 거지 뭐.
글 쓰면서 묘했다. '나'를 만난다는 게 이런 뜻일까. 편치 않았다. 백지 앞에 놓고 혼자서 쓰면 편안할 줄 알았는데. 온갖 감정 복잡하게 얽혀 한 줄 쓰는 것조차 힘겨웠다.
매일 쓰면서 알게 됐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불편하다고 말했던 의미를.
이래도 허, 저래도 허,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무슨 일이든 꼬치꼬치 캐묻고, 옳고 그름 판단하려 했고, 직접적인 내 문제가 아닌 경우 대부분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했었다.
나는 벽이었다. 차가운 쇠붙이로 만든 벽.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어려워했던 거다.
전혀 아니라고 믿었던 내 모습을 글 속에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 '서먹하다'는 느낌 처음 가졌다.
바꾸려는 노력.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항상 다른 사람 바꾸려고 애쓰며 살았다. 힘들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를 바꾸는 것도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시도하고 노력하는 재미는 있었다. 글 쓰기 시작한 무렵, 나는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경청했다. 귀담아 들었다. 별 것도 아니라 여겼던 그들의 이야기가 별 것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둘째, 공감했다. 내 일처럼 생각했다. 힘들겠구나, 아프겠구나, 슬프겠구나. 마음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셋째, 질문했다. 어림짐작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지. 질문에 답하는 동안 상대가 스스로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따뜻한 사람? 기대하지 않는다. 타인의 평가에 기대 살고 싶은 마음 없다. 다만, 내가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서먹했고, 변화에 익숙할수록 자신과 친근해지는 느낌이 좋았다.
좋은 말도 있고 나쁜 말도 있다. 나쁜 말 들으면 기분 썩 좋지 않다. 맞는 말이라 해도 불쾌한 건 사실이니까.
글은 다르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엄정하게 마주하면서도 기분 나쁘다는 생각 들지 않는다. 점수 매긴다기보다는, 미처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 알게 된다는 기쁨이 크다.
더 좋아져 볼까?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다. 틀리고 나쁘고 엉망이라 '고치는' 게 아니라, 지금도 나름 괜찮지만 '더 나은 내'가 되려는 욕구다. 엄청난 변화? 그딴 건 없다. 그저, 과거의 나에 비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직장 생활 하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보며 어렵다고 한다. 이 정도면 됐다. 너무 쉬워지는 것도 마땅치 않다.
10년 가까이 매일 글 쓰고 있다. 아직도 쓸 때마다 서먹한 나를 만난다.
서먹하다 : 낯이 설거나 친하지 아니하여 어색하다.
- 네이버 어학사전
낯설고 어색한 내 모습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일이 좋다.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몰랐던 존재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 예외 없다. 틀림 없다.
'낯선 나'를 자주 만나야 한다. 그래야 달라질 수 있다. 나를 알아야 두려움이 사라진다. 나를 알아야 불안함도 줄어든다.
서먹하다는 말은 더 친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서먹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