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판단하는 기준
말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조리있게 설명할 줄 안다고 믿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내가 설명하면 상대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아! 그렇군요! 상대가 이해하면 속이 시원했다. 이해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역시 내가 설명을 잘했구나 만족감에 도취되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간혹 있었다. 짜증이 났다.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바보 아냐? 어떻게 이보다 더 쉽게 설명을 한단 말이야!
열 명 중 여덟 명이 내 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나머지 두 사람을 바보 취급하면서 살았다.
내 설명을 들은 사람의 행동 결과를 보면 만족스러웠다. 쉽고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을 하니까, 즉시 알아듣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거라고 확신했다. 똑 부러지게 설명하는 능력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을 무렵, 나는 기고만장해지기 시작했다.
잘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엉뚱하게 실행하는 걸 본 적도 많다. 짜증이 났다. 아까 분명히 알아들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이 모양이야! 몇 번을 얘기해도 달라지지 않다니!
내가 설명한 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정상'이 아니라며 단정지었다. 열 명 중 여덟 명의 정상인과 두 사람의 비정상인.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라며, 파레토 법칙을 내 멋대로 적용시키곤 했다.
아이패드 사용법에 관해서 아들과 장시간 토론을 벌였다. 아들의 젊은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인정하지만, 아직은 기계치 소리를 들을 만큼 나이들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기도 했다.
답답했다. 아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
"세상에서 설명을 가장 쉽게 잘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냐? 그게 바로 아빠야 임마!"
잔소리 퍼부어가며 끙끙대고 있을 무렵, 아들은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아빠는 말을 너무 쉽게 해.
그래서 너무 어려워.
사람마다 수준이 다르고 연륜과 경력이 다르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상대의 수준과 연륜과 경력에 맞춰 그 사람의 '언어'로 전할 줄 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전혀 아니었다.
항상 내 입장이 우선이었다. 1 더하기 1은 2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누군가를 가르칠 자격이 없다. 자격조차 없는 내가 누구보다 자격이 출중한 사람인 척 살았던 거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나이, 학력, 경험, 환경, 조건, 관심 등 각자의 삶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코칭과 지도가 가능해진다.
무조건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공부하고 연구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내 강의를 듣는다. 각자의 언어로 내 말을 받아들여 이해할 수 있도록, '다름'에 초점 맞추기로 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강의 시간 내 목소리가 낮아지고 느려졌다. 그들의 표정과 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쩜 저럴 수가 있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어.
저 사람 좀 이상하지 않아?
나는 늘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식의 수준에서 벗어나면 그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내가 이상한 사람일 수 있음을 놓치고 살았다.
이상한 게 아니라 다른 것이었을 뿐. 이상한 건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거였다.
설명하는 사람도 답답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소통이란, 말의 이해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온전히 상대방이 되어 보는 것.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설명하고 받아들이는 것. 한 번, 두 번, 세 번, 같은 설명을 반복하면서도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는 여유.
사람을 대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운 일 통해 사람을 얻게 되면, 두려울 게 없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