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되씹기보다는
7촌 아재는 마산에서 국수집을 운영하고 있다. 젊어서 번 꽤 많은 돈에 은행 대출을 더해서 5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지하 1층에 식당을 차리고, 더 많은 돈을 벌겠다는 푸른 꿈을 꾸었다.
평생 설거지 한 번 해 본 적 없는 아재는 맨 처음 국밥집으로 시작했다. 손님이 없었다. 5층 건물 임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텅텅 빈 건물에 은행 이자만 꼬박꼬박 내야 했다. 결국 아재는 헐값에 건물을 팔았다. 이 사실을 안 아재의 자녀들이 난리를 쳤다.
결국 아재는 위약금 욱신하게 물고 건물을 다시 되찾았다. 이미 엄청난 손해를 본 상태에서 자녀들로 인해 마음 상처까지 입었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나겠다 하여 충북 단양에 있는 작은 암자로 들어갔다. 세속을 떠나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갔으나, 아재 성격상 절에서 종이나 치고 있을 사람이 못 되었다. 일 년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국수를 팔기 시작했다. 국밥을 찾는 손님은 거의 없었지만, 다행히 국수는 조금씩 팔리기 시작했다. 아내와 둘이서 쉴 틈 없이 일하다가, 지금은 자녀들까지 합세해 제법 돌아가는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
"남들이 보면 돈 많이 버는 줄 알겠지만, 식당이란 게 아무리 많이 팔아도 재료값에 인건비 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어요. 은행 대출 갚으면서 본전치기 한다 생각하면 돼요. 그래도 나이 70에 놀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아재는 매형인 내 아버지에게 현재의 자기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가 찾아뵈야 하는데, 형님 내외분이 이렇게 식당에까지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도 빼먹지 않았다. 들깨칼국수와 생감자전을 시켜 배불리 먹고, 아재 몰래 카운터로 가서 음식값을 계산했다. 아버지 뒷주머니에 50만원이 든 봉투를 넣어드리며 아재한테 전해드리라 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는 찜질방을 연상케 했다. 얼른 시동을 켜도 에어컨을 4단으로 가동시켰다. 차 실내 온도가 조금 내려갔을 무렵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여기까지 온김에, 창원 파티마 병원에 계신 작은아버지도 한 번 뵙고 가지요."
어머니는, 안그래도 소식 궁금했는데 너 바쁠까 봐 가 보자 소리도 못하고 혼자 걱정만 했다며 좋아하셨다. 입원해 계신 작은 아버지를 뵈러 가는 것도 좋았겠지만, 다리 때문에 외출 힘든데 이렇게 밖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게 더 좋았으리라.
마산에서 창원 파티마 병원까지는 차로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토요일이라 병원 로비에는 사람 별로 없었다. 입원실까지 올라가려 했더니, 면회 방문은 한 사람밖에 안 된다고, 경비를 서는 사람이 단호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이 1층 로비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작은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내려오라 했다.
지난 번에 뵜을 때보다 얼굴이 한결 좋아 보였다. 병원을 세 군데나 돌아다니면서 이런 저런 검사와 치료를 다 받아 보았으나, 왼쪽 옆구리에 차오른 물혹을 제거할 수 없었다. 원인조차 밝힐 수 없었다. 딱 맞는 항생제도 찾지 못했다. 병원비만 천만 원 가까이 썼다.
창원 파티마 병원에 가서야 물혹의 원인과 그에 맞는 항생제를 찾아 제대로 치료할 수 있었다. 하루에 주사를 일곱 대나 맞는다고. 그러면서, 앞으로 6주 정도 후에는 완전히 나아서 퇴원할 수 있다고. 작은아버지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월남전 참전 용사로 산재 혜택을 볼 수 있으니, 창원 파티마 병원에서는 병원비의 90퍼센트를 나라에서 대준다고 한다. 여러 모로 이번 병원이 작은아버지에게는 행운이었다. 건강해지고 있는 작은아버지 모습에 아버지와 어머니도 안심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모처럼 강의 없는 날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시고 마산과 창원을 돌며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척들 두루 만났다. 굳이 시간 내지 않아도 될 일. 그러나, 시간 한 번 내고 나면 뿌듯하고 기분 좋은 일. 아버지와 어머니는 "네 덕분에 처남 가족과 동생 볼 수 있어 좋았다"라며 흐뭇한 내색을 하셨다.
최근 몇 달 동안, 가족에게 등을 돌리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마음이 크게 상했었다. 돈 문제였다. 가장 가까이에서 아들 고생하는 거 다 지켜본 두 분이, 내 돈을 엉뚱한 곳에 쓰는 걸 보고는 배신감도 느꼈고 상처도 받았다. 심지어 두 번 다시 보지 않을까 생각까지 했었다.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툭 뱉는다. "내가 너한테 미안한 게 많다." 이어서 어머니도 웅얼거렸다. "네가 허름한 옷에 모자 쓰고 집 나서는 뒷모습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나는 일부러 가속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마산 아재가 싸 준 국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부산 삼촌이 사 준 빵까지 디저트 삼았다.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모처럼 강의 없는 날, 집에서 편히 쉬지 않고 종일 운전했더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해질무렵 사무실로 향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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