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내뱉는 말 습관이 모든 걸 망가뜨린다
사무실에서 글 쓰고 책 읽다 보면 문득 멍해지는 때가 있다. 무엇을 보는지도 모를 정도로, 눈은 분명 어딘가를 향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는, 그런 때가 있다. 오늘은 바로 그런 때에 내가 맞은 말이 생각났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말을 던지는 줄도 모른 채 내뱉는다. 말하는 사람은 말할 준비가 되었을 테지만, 말을 듣는 사람은 들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그렇게 J가 던진 말에 나는, 맞았다. 한동안 얼얼했다.
말을 맞은 사람은 이후로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더 심한 말들을 마구 던져버린다. 하지만 그건 죄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다. 이미 말에 맞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니까. 그건 충분히 용납되는 '정당방어'인 셈이다.
말을 먼저 던진 사람은 말을 맞은 사람이 내뱉는 온갖 험한 말들에 대해서 따질 권리가 없다. 기분 나쁜 말을 들었으나 참아야 한다거나, 아무리 그래도 더 나쁜 말을 마구 쏟아내지는 말아야 한다거나, 그냥 넘겼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 아니냐는 등의 말은 설득력이 없다. 말을 먼저 던진 사람은 말을 맞은 사람의 말을 고스란히 집어삼켜야만 한다.
나는 살면서 말 실수를 많이 한 편이다. 성질이 급하고 말이 빠른 편이라서 감정이 뒤틀리면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고, 내가 던진 말에 맞은 사람과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고, 말 한 마디 때문에 비즈니스가 엉망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예전에는 술까지 마셨으니 얼마나 많은 말 실수를 했겠는가. 그래도 그때는 '술김'이라는 면죄부라도 있었지. 끊은 지 6년째다. 나는 여전히 말을 조심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 누구한테 어떤 말을 던지게 될지 나 스스로도 잘 몰라서, 그게 항상 조심스럽다.
최근에 J로부터 맞은 말은 아직도 얼얼할 지경이다. 그래서 꽤 많은 날이 흘렀지만 여전히 분이 삭지 않는다. 이런 꼴을 보면 나도 아직 어른 되기는 한참 멀었구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든 말을 조심해야 한다. 아니, 말을 삼가해야 한다.
지난 날에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시련의 대부분 원인은 말 때문이었다. 그때 입을 다물었더라면, 바로 그 순간에 아무 말 말았더라면, 어쩌면 내 인생은 이것보다 훨씬 편안하고 평온했을지 모른다.
강의할 때에야 당연히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는 최대한 말을 줄여야지. 그러면서도 또 사람들 만나면 나도 모르게 준비되지 않은 말을 마구 내뱉는다. 모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 동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말을 맞은 사람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말을 던진 사람은 까맣게 잊는 법. 그래서 말 많은 사람이 죄도 많이 짓고 사는 거다.
책 읽고 글 쓰다가 말이 생각났다. 사무실에 혼자 있으면 좋다. 말을 할 일이 없다. 때로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마음이 편안하다. 오직 책 읽고 글만 쓰면서. 눈과 귀만 열어놓고 입을 닫는다. 그런 하루가 저물 때는, 오늘은 참 단정한 하루를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표현의 시대다. 자신이 가진 지식과 지혜와 노하우를 세상과 공유하고, 인정받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아갈 기회가 훤히 열린 세상이다. 그 때문인지, 너도 나도 자신이 옳다고, 최고라고 주장하는 글과 사진과 영상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걸 보면서, 어떤 사람은 엄지를 치켜세우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상대적 박탈감에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말과 글은 축복의 꽃가루가 되기도 하고 날카로운 비수가 되기도 한다. 공영 방송에서 개인 유튜버에 이르기까지, 말과 글을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로 다루는 일이 더 많아지길 소망해 본다.
커피 포트에 물 끓는 소리가 난다. 믹스 커피 두 봉지를 뜯어 뜨거운 물과 함께 컵에 따라 부었다. 멍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말에 관한 글을 썼다. 아직 한참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채우기 위해.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면서, 말을 더 조심하고 삼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