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받아들이는 것부터
10년 전, 처음으로 글을 쓸 때 제 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나 잘났다'는 글과 '나 못났다'는 글입니다. 제가 잘났다고 쓴 글은, 다 쓴 후에 읽어 보면 온몸이 오그라들었습니다. 제가 못났다고 쓴 글은, 읽을 때마다 마음이 어두워져 아예 읽기가 싫었습니다. 독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난 구석도 있고 못난 구석도 있게 마련입니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마음 상태에 따라, 의욕 충만할 때도 있고 의기소침할 때도 있습니다. 정의감에 불탈 때도 있는가하면, 만사 귀찮고 못 본 척하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측면을 가지는 이유는,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오직 하나의 성품과 하나의 기질로만 살아가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이중 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판단이 수시로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김치찌개가 당기는 날도 있고 된장찌개가 먹고 싶은 날도 있지요. 자기 안에 잠재된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입니다.
그렇다면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네, 맞습니다. 있는 그대로 쓰면 됩니다. 비슷한 상황이라도 오늘은 화가 난다면 화를 내는 자신을 쓰는 것이죠. 불과 일주일 전에는 잘 참고 견딘 일이라 하더라도, 오늘 다른 감정이 북받치면 그것을 그대로 쓰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관성의 문제가 발생할 테지요. 하나의 주제로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책을 쓸 때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허나, 평소 글쓰기 연습을 할 때는 자기 안의 다양성을 최대한 뿜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독자도 챙겨주고 위로해줄 것 아니겠습니까.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면 가식적인 글을 쓰게 됩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마음을 진정하라는 글을 쓰면, 독자가 그 글을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써야 독자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종일관 똑같은 감정으로 똑같은 메시지만 쓴다면 기계가 쓴 글이나 다름 없겠지요.
감정은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요? 화가 났다, 슬프다, 기쁘다, 행복하다, 불행하다, 짜증난다 등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화가 난다고 해서 화만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밥도 먹고 일도 하고 통화도 하고 지하철도 타고 TV도 보고 그리고 화도 내지요. 그러니까, 화가 났다는 사실을 쓰고 싶다면 화가 난 상태에서 밥 먹고 일하고 통화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 됩니다.
글을 써 본 경험이 부족할수록, 한 가지 감정에 파묻혀 거기에만 집중하는 글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다시 말하지만, 살아있는 존재로서 글을 써야 독자로부터 인정도 받고 공감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에 제가 그린 그림을 보면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은대야, 사람의 팔과 다리는 이렇게 90도로 꺾여 있지 않아. 사람을 그릴 때는 사람의 모습을 잘 보고, 있는 그대로 그리도록 해 봐."
참고로 저는 '졸라맨'밖에는 그릴 수 없었거든요. 팔다리는 전부 딱딱 끊어지게 그렸으니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실 만도 했지요.
글쓰기도 똑같습니다. 저 사람도 나와 다를 바가 없구나, 저 사람도 나처럼 힘들게 살고 있구나, 저 사람도 화를 내는구나, 저 사람도 화났을 때는 저렇게 밥을 먹는구나...... 살아 숨쉬는 존재의 감정과 모습을 있는 그대로 쓸 수 있을 때, 비로소 독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거겠지요.
하나의 사건으로 비롯된 하나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품은 채 보낸 오늘 하루의 일상 이야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글이 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