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습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도 않고 연결고리도 없는 두 가지 일이 꽤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언젠가 한 번은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유, 대조 등 전문적인 말을 쓰지 않고서라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닮은꼴을 찾고 쓰는 과정은 의미가 있습니다.
난 이만큼 해줬는데, 왜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하는 걸까? 공허하고 괘씸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 등산로 입구에 서 있는 나무를 쳐다 보곤 합니다. 나무가 인생과 닮았다는 사실을 찾고, 나무의 태도를 내 삶에 견주면 기분이 한결 나아집니다.
난 왜 이렇게 초라하고 못났을까 싶은 순간에는 길가에 핀 한 송이 꽃을 만납니다. 비교도 없고 불평도 없고 기준도 없습니다. 오직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활짝 피우는 데에만 온힘을 다합니다.
'연결'하는 습관은 온 세상을 배움터로 만듭니다. 관심을 갖고 지켜 보는 여유와 정성도 생겨납니다. TV나 스마트폰처럼 일방적 주입이 아니라, 내가 주체가 되어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주변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일상의 모습과 삶을 연결하는 습관이 결국은 창조력과 살아가는 힘을 빚어내는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오래 전, 약 3년간 막노동 현장에서 일한 적 있습니다. 꼭두새벽에 인력시장에 나가서 하루하루 일거리를 받았고, 잡부 일당으로 다섯 식구 간신히 먹고 살았던 시절이지요. 매일 글을 쓰면서, 글쓰기와 막노동이 제법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렵고 힘듭니다. 글 쓰기도 어렵고 등짐 지고 나르는 것도 힘듭니다. 하기 싫습니다. 글 쓰는 것도 자꾸 미루게 되고, 종일 삽질하는 것도 때려치우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일을 하고 싶지요. 편하고 재미있고 쉽고 돈 많이 버는 일. 물론 세상에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죠.
하기 싫다는 공통점 뒤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어쨌든 하고 나면 뿌듯하고 보람 있다는 사실입니다. 글 한 편 쓰고 나면 쓰길 잘했다 생각이 듭니다. 조금 전까지 하기 싫다 했는데, 불과 한두 시간만에 내일 또 써야지 생각이 달라집니다. 새벽에 봉고차에 몸 실을 때는 답답하고 막막하지만, 일을 마치고 일당 받아 집으로 돌아올 때는 오늘도 주어진 하루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하기 싫은 일. 힘들고 어려운 일. 글쓰기와 막노동. 저는 이 두 가지 일 덕분에,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다들 아는 내용이겠지만, 글을 쓴다고 해서 큰 돈이 생기는 일은 없습니다. 당시 막노동 잡부 하루 일당은 10만 원 정도였고요. 돈 되는 일을 찾는 사람이 글을 쓰거나 막노동을 하는 경우는 없을 겁니다. 둘 다 돈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고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글 쓰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력시장 말고는 저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거든요. 시작은 같습니다. 어쩔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 돈도 안 되는 글을 10년 동안 썼더니, 글 말고 다른 경로를 통해 먹고 살 만큼의 돈이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초라한 일당이지만, 저는 그 잡부 일당으로 다섯 식구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금액은 보잘 것 없었지만, 어찌 됐든 제 삶을 계속 유지시켜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감사할 밖에요.
입사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사원이 직장 생활이 어떻고 회사 방침이 어떻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면, 10년차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어떤 분야든 경력이 쌓여야 실력도 늘게 마련입니다. 특히 글쓰기 분야는 습작과 시간이 결합된 누적량이 중요합니다. 막노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6개월 동안에는 온몸에 상처만 가득 생깁니다. 못에 찔리고 다리 삐고 발등 찍히고 옷 찢기고 목과 코에 염증 생겨 숨 쉬기도 힘듭니다.
조급한 마음으로는 글 쓰기도 힘들고 막노동 견뎌낼 수도 없습니다. 꾸준해야 합니다.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정성 다해 우직하게 버텨낼 수 있다면, 글쎄요, 두 가지 다 한 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위 세 가지 공통점 외에도 글쓰기와 막노동은 닮은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겸손을 배우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무조건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는 게 아닙니다. 자만과 오만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도 있고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도 존재한다는 이 명확한 사실을 눈으로 직접 보게 해줍니다.
책 한 권 썼다고 해서 어깨 힘 넣고 다닐 일이 아니구나 깨닫게 하고요. 세상에는 나 말고도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하나씩 배워갑니다. 막노동을 하면서 조금 다른 인생을 경험했고요. 둘 다 저한테는 큰 재산입니다. 글을 쓰며 살게 된 것도, 막노동을 했던 경험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