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함께 쓰다
오늘은 실패했던 경험에 대해 써 봐야겠다.
당신의 실패 경험을 들려주세요.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첫 번째 문장은 스스로의 결심입니다. 글을 쓰기 위해 다짐을 하는 것이죠. 고립된 상황입니다. 오랜 시간 글을 써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어떻게든 글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쓰는 내내 막히고 멈추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두 번째 문장은 상대가 묻는 겁니다. 마주 앉아 있는 셈이죠. 실제로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텅 빈 의자에 투명인간으로 앉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느낌이 다릅니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글을 쓰는 것보다는 말을 하는 것이 조금은 수월하게 느껴집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타인과 공유한다는 개념입니다. 쓰고 싶은 욕구 때문일 수도 있고, 써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보고 듣고 체험하고 느낀 어떤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죠.
책이 출간된 후에 독자가 내 책을 읽어야만 비로소 소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글을 쓰기 시작하는 단계부터 나눔은 이루어집니다.
혼잣말을 하듯이 글을 쓰면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글을 글처럼 쓰는 습관이 생깁니다. 평소에 친구와 대화할 때는 전혀 쓰지 않는 어려운 어휘나 구절을 자꾸만 쓰게 되는 것이죠. 둘째, 나의 의견이나 주장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고집을 부리게 됩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주고받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면 공감을 받기가 힘듭니다. 셋째, 재미없는 이야기를 나열하게 됩니다. 상대의 반응을 살펴야 합니다. 늘어놓기 식의 글은 지루합니다. 외면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상의 독자를 맞은편에 앉혀 두고 글을 쓰면 위와 같은 현상을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나의 이야기를 상대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 글을 쓰기도 수월하고 이야기를 조리 있게 풀어나가기도 쉽습니다.
있지도 않은 가상의 독자와 대화를 하면서 글을 쓴다? 미친 거 아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한 번만 제 말대로 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 앞에 여러 사람을 앉혀 두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특히, 제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을 떠올리면서 글을 쓰면 그야말로 글이 '술술' 써지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어떻게든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글 쓰는 일은 외롭고 험난한 여정입니다. 함께 하면 끝까지 갈 수 있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회의적으로 말하지만, 사실은 모여서 글을 쓰는 것도 찬성입니다. 다만, 사람이 모이면 글을 쓰기보다는 자꾸 엉뚱한 일에 시간을 쏟기 때문에 만류하는 것이죠.
가상의 독자와 함께 글을 쓰면 다른 길로 샐 일도 없습니다. 계속 그와 대화를 나누기만 하면 됩니다. 상대의 입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 때도 많습니다. 신기하지요? 글 쓰는 동력을 다양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자꾸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세상에! 그래서? 더 듣고 싶어! 그런 말을 했단 말이야? 왜 참았어? 아! 그랬구나! 이러한 감탄사와 질문이 계속 이어지면, 작가는 그저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답변만 적어 나가면 됩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가상의 독자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글을 쓰도록 만들어주는 귀한 존재입니다. 의자 하나 앞에 놓고 글 쓰십시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