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자유를 얻는 방법
회사에 다니던 시절,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 보면서 짜증 많이 났습니다. 그 사람의 지각이 제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 마치 그 사람이 도덕적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회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퇴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매일 밤 늦게까지 일하느라 퇴근 시간 지킨 적이 없는데, 어떤 사람은 저녁 6시만 되면 칼같이 집에 가는 걸 보면서 화가 많이 났었지요. 마치 저만 손해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각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시간에 출근하도록 만들기 위해, 땡 하면 퇴근하는 사람들을 오래 붙잡아 일을 하도록 만들기 위해, 저 혼자서 끙끙 앓았습니다. 멀쩡하게 일 잘하다가도, 그런 사람들만 생각하면 속에 천불이 났었지요.
열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강의했습니다. 머피의 법칙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꼭 제가 앉는 좌석 주변에는 전화통을 붙잡고 시끄럽게 통화하는 사람이 한두 명 있었습니다.
"저기요. 통화 좀 그만하시면 안 될까요!"
언성을 높인 채 인상 팍팍 쓰면서 주의를 주었습니다. 마치 제가 세상 정의의 사도가 된 것마냥,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뜯어고치려는 시도를 했었지요.
곱게 사과하며 전화를 끊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되려 화를 내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받아치곤 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강의 가는 중에 꼭 얼굴 붉히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모임이나 회의 때, 쓸데없는 질문으로 마치는 시간을 초과하게 만드는 사람들 있었습니다. 이후의 일정 때문에 급히 나가 봐야 하는데, 몇몇 개념 없는 사람들 때문에 저의 시간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밥이나 술을 먹는 식당에서도, 큰소리로 떠들거나 주정하는 사람들 보면 참지를 못했습니다. 왜 내가 저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입어야 하나. 용납하지 못했던 거지요. 실은, 그들 때문에 딱히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것도 없었는데 말이죠.
친구들 모임에서 저만 빠지는 경우 종종 있었습니다. 일부러 저를 뺀 것인지 정확치도 않았고, 그들이 의도적으로 저를 밀어낸 것인지도 확인할 길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저 혼자서 마치 '왕따'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괴로워했었지요.
감옥에 있을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곁에 앉아 한숨 쉬는 사람들, 휘파람 부는 사람들, 밤에 코를 고는 사람들, 씻지 않는 사람들, 화장실 오래 쓰는 사람들, 몸부림 심하게 치는 사람들, 밥 남기는 사람들.... 하나부터 열까지 제 심기를 건드리는 사람 많았습니다.
이런 게 징역생활이구나. 그들을 바꾸기 위해 좋게 타일러 보기도 하고, 화를 내며 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비슷한 소리를 했었지요. "그래서 내가 뭐 당신한테 피해 준 거 있냐!"
꼴뵈기 싫고 듣기 싫은 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어야 하는가. 저는 늘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고, 사사건건 신경 거슬리게 만드는 인간들을 도저히 참아 넘길 수가 없었던 겁니다. 저 자신도 죄 짓고 감옥에 간 주제에 남을 교정하려 들었던 것이죠.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요. 저처럼 다른 사람 때문에 일상 생활 힘들 정도로 스트레스 받는 이가 적지 않은 듯합니다. 최근에도 몇몇 사람들 상담을 했는데요. 과거 저처럼 다른 사람 말이나 행동 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예민한 성격을 '질병'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인생인데, 자꾸만 다른 사람 신경 쓰느라 정작 중요한 내 삶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누군가의 요청으로 조언을 한 게 아니라, 아무도 바라지 않는데 혼자서 참견하는 오지랖을 펼친 거지요. 사회 정의를 실현한 게 아니라, 제 입맛대로 다른 사람 말과 행동을 통제하려 했던 겁니다. 그럴수록 저만 불행해졌습니다.
첫째, 자신이 극도로 예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옳다'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데요. 옳고 그름의 기준이 주관적이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많이 예민하구나. 이 사실을 인정해야 바꿀 수 있습니다.
둘째, 내 힘으로는 절대 다른 사람 못 바꾼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타인을 좋은 길로 인도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한 채 살아갑니다. 불가능합니다. 그 누구도 타인의 강제에 의해 삶을 바꾸지 못합니다. 애쓸수록 헛수고만 하는 셈입니다.
셋째, 상대방을 위한다는 가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모두 나를 위해서 그런 겁니다. 내가 보기 싫고, 내가 듣기 싫고, 내가 견디기 싫고, 내가 참을 수 없어서 그런 거지요. 내가 싫어서 참견하는 거면서 자꾸만 상대방 위한다는 말로 꾸며서는 곤란합니다. 정말로 위한다면, 그가 정중히 요청할 때에만 조언을 건네야 합니다.
넷째,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언제나 '나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뇌는 '질서' 본능이 있어서 주변 상황과 타인을 내 뜻대로 가지런히 통제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지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섯째, 내 삶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곧 행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을 다스리고 타인을 내 뜻대로 조종하려는 태도는 언제나 불행과 불편을 가져옵니다. 불가능한 일에다 에너지를 쓰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든, 나는 내 인생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타인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이것이 문제이고, 어머니는 저것이 문제이며, 아내는 이런 문제가 있고, 아들에게는 또 저런 문제가 있다.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품고 살았습니다. 아울러, 제 노력으로 가족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을 안고 있었지요.
지난 10년간, 오직 제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글 쓰고, 책 읽고, 강의 준비하고, 강의하고, 수강생 코칭하고, 사업 확장하고. 그 과정에서 과거와는 달리 바람직한 인간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술도 끊고, 말도 조심하고, 쓸데없는 만남도 대폭 줄였지요.
가족 문제 고치고 바꾸겠다 안간힘을 썼을 때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저 제 삶에만 집중하면서 살았더니 가족 모두 좋아졌습니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뜯어고치려 애쓰는 것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일 뿐입니다. 나와 내 인생에 집중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과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혹시 신경 거슬리게 하는 사람 있습니까? 주변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습니까? 막 뜯어고쳐주고 싶습니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렇게 주문을 외워 보세요. "나에게 집중하자!" 며칠만 연습해도 전혀 다른 세상 만나게 될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 <요약 독서법> 심화 과정 : 9/13(토) 오후 1~5시[4H], 온라인 줌(ZOOM)
- 신청서 : https://blog.naver.com/ydwriting/223988965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