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나의 글을 쓴다

선택과 자유

by 글장이


어느 유명한 작가가 책에다 이런 글을 써놓은 걸 본 적 있습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글을 써서 책을 내는 것은, 출판사에 피해를 입히는 짓이다."


저는 이 부분을 읽고는 그 책을 덮어버렸습니다. 더 읽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제법 좋은 글을 많이 썼다고 생각했던 그 작가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혐오감마저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글을 쓰는 사람은, 출판사에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아예 책을 출간할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작가 스스로 자신의 글이 충분히 많이 팔릴 거라는 확신이 있을 때에만 책을 출간해야 한다는 말인데요. 그런 확신을 가지는 작가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의문입니다.


글을 잘 쓰지 못하는데도, 자기만의 다른 능력으로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사람은 책을 써도 되는 것이지요? 글은 형편없지만, 어차피 커뮤니티 통해서 책이 많이 팔릴 거니까 출판사에 피해를 입히는 건 아니잖습니까.


결국, 출판사에 피해를 주지 않을 만큼 책을 많이 팔 자신 있는 사람만 작가가 되어야 하는 거네요. 글쓰기나 철학이나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장삿꾼 기질이 다분한 사람만이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이 논리를, 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글쓰기는 개인의 선택이며 자유입니다. 그래서 투고를 하는 것이지요. 출판사가 원고를 검토한 후, 출간할 만하다 판단하면 계약을 체결하는 겁니다. 계약하는 순간부터 이미 출판사도 판매량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지요. 피해를 입을 것 같다고 판단되면, 계약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왜 작가가 판매량 때문에 글을 쓰지 말아야 합니까.


현실적인 얘기를 좀 해 봅시다. 제 주변에는 글쓰기 실력이 한참 모자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많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들은 글쓰기와는 다른 콘텐츠로 이미 상당한 수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50만 시청자를 보유한 사람 있다고 칩시다. 이런 사람이 책을 쓰면, 그 중에 1% 팔로워만 책을 구입해도 5천 권 판매가 되는 것이죠.


그럼, 이런 사람은 글을 형편없이 써도 출판사에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 작가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봐야 하는 걸까요?


물론, 작가가 책을 출간하게 되면, 한 권이라도 더 독자 손에 쥐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개인 SNS에 홍보도 많이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알려야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판매량을 이유로 "글을 써라, 말아라"라고까지 표현하는 것은 도가 지나친 언행이라 생각합니다. 작가가 되길 꿈꾸는 많은 사람의 기를 꺾는 행위입니다.


아마도 그런 글을 쓴 작가는 자신의 책이 제법 많이 잘 팔렸을 테지요. 축하할 일입니다. 허나, 자신의 책이 잘 팔렸다는 것이 잘 팔리지 않는 작가들에게 글 쓰지 말라고 얘기할 타당한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글을 잘쓰기 위해 공부하고 연습하고 훈련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명백합니다. 대충 쓰고 책이나 한 권 내야겠다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책 쓰지 말고 다른 일 하는 게 낫겠지요. 정성과 노력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이들에게는 '작가의 자격'을 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름 최선을 다해 글을 쓰고 고치고 또 쓰는, 부족하지만 열심인 사람들은 이미 '충분한 작가의 자격'을 취득한 셈이라고 봐야 마땅합니다. 잘쓰는 작가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 '어제보다 잘쓰는' 작가입니다.


약간의 재주를 타고난 덕분에 조금만 연습해도 글을 술술 잘쓰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부럽습니다. 허나, 그런 작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다수 작가들은 매일 쓰고 다듬고 또 쓰면서 연습하 훈련합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모자라지만, 실력이 충분치 못하다는 이유로 아예 책도 내지 말라는 소리를 감히 누가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글을 썩 잘쓰지 못합니다. 겨우 기본적인 글쓰기 원칙을 지킬 뿐이지요. 머리도 나쁘고, 공부하는 요령도 잘 몰라서, 무려 10년 넘게 매일 쓰고서야 이 정도 수준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출간한 열한 권의 책도 베스트셀러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난 10년 동안 매일 글을 쓰면서 인생도 바꾸었고, 세상 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한 마디로,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잘 살게 되었다 이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책쓰기를 전하면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자격' 운운한 적 없습니다.


전과자, 파산자, 알코올 중독자, 막노동꾼, 그리고 암 환자. 무엇보다도, 글을 잘쓰지 못하는, 부족하고 모자란 수준의 작가. 이런 저도 매일 글을 씁니다. 책도 출간합니다. 제가 실력이 부족하고, 과거 이력이 형편없다 하여, 저의 글 쓰는 삶까지 지적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자격 없는 인간들도 정치를 합니다. 자격 없는 인간들이 검사도 하고 판사도 합니다. 자격 없는 인간들이 의사도 합니다. 그런 인간들을 향해서는 쓴소리 한 마디 날리지 못하면서, 작가는 되게 만만하게 보이나 봅니다.


다시 말하지만, 글쓰기는 선택이며 자유입니다. 쓰고 싶다면, 얼마든지 써도 됩니다.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았다면, 그들의 눈을 믿고 얼마든지 출판해도 됩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질에 연연하지 말고, 오직 자기만의 소신과 신념으로 작가의 길을 가길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할 겁니다. 과거 제 삶이 초라하고, 지금 저의 글쓰기 실력이 미비하다 할지라도, 글에 담는 정성만큼은 그 어떤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 못지않다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줄 필요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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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눈치 보느라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해주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진심으로 당신의 글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난 인간들의 뺀질한 글 말고, 거칠고 투박하지만 진솔한 글. 우리는 그런 글을 쓰면 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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