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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와 퇴고, 피그말리온이 되는 순간

나의 글에 숨결을 불어넣는 방법

by 글장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여인상과 사랑에 빠집니다. 아름답게 조각했지만, 그것은 여전히 차갑고 딱딱한 돌덩이였습니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사람 모습을 한 돌이 아니었습니다. 숨을 쉬고, 눈을 뜨고,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살아있는 존재'였습니다.


초보 작가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초고를 완성하는 순간, 글쓰기가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하는 습성입니다. 하지만 초고 완성은 조각가가 돌을 깎아 형태를 만들어낸 단계에 불과합니다. 완성된 형태이지만, 아직 생명이 없습니다.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살아있는 글'이 되려면, 피그말리온처럼 그 차가운 돌에 숨결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초보 작가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습니다. "초고를 쓸 때는 조각가가 되세요. 거친 끌로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쳐내고, 전체 윤곽을 드러내는 데만 집중하세요."


조각가가 대리석 덩어리 앞에 섰을 때, 섬세한 눈썹 하나를 먼저 새기지 않습니다. 전체적인 머리의 형태, 몸의 균형, 팔다리의 위치를 먼저 잡습니다. 디테일은 나중입니다. 구조가 먼저입니다.


초고를 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첫 문장을 고민하느라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이 문단이 정확히 맞는 표현인지 고민하며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끌을 들고 돌을 깨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생각을 쏟아내야 합니다.


10년 넘게 작가들을 지도하면서 한 가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쓰지 않아서'란 사실입니다. 완벽한 문장을 쓰려고 하면 결국 한 줄도 쓰지 못합니다. 첫 문단을 열 번 고쳐 쓰다가 지쳐서 그만두게 될 겁니다.


조각가는 돌을 깎는 동안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잘못 깎으면 다시 다듬으면 됩니다. 전체 형태만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작은 흠집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습니다. 초고도 같습니다. 어색한 문장, 부정확한 표현, 논리적 비약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고의 목표는 단 하나입니다. '형태를 드러내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뼈대가 무엇인지, 어떤 순서로 전개될 것인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날 것인지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조각을 완성한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작품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것이 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그는 조각상에게 옷을 입히고, 장신구를 걸어주고, 꽃을 선물했습니다. 조각상은 여전히 차가운 돌에 불과했지요.


초보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초고를 완성하는 순간, 기쁨과 동시에 맹목적인 애착이 생깁니다. "이 문장은 정말 잘 썼어", "이 표현은 너무 마음에 들어", "이 부분은 절대 바꿀 수 없어". 마치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의 차가움을 옷과 장신구로 가리려 했듯이, 작가들도 초고의 문제점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많은 초보 작가가 이런 말을 합니다. "대표님, 제 글을 고치려고 보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 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라,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진심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진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독자는 작가의 진심을 읽을 수 없습니다. 독자는 오직 글자로 표현된 것만 볼 수 있습니다. 조각가가 자신의 사랑을 아무리 쏟아도 돌이 스스로 따뜻해지지 않는 것처럼, 작가의 진심도 정확한 언어로 표현되지 않으면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퇴고의 첫 번째 단계는 '거리두기'입니다. 자신의 글을 사랑하되, 맹목적으로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조각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어느 부분의 비율이 어긋났는지, 어느 곳의 표면이 거친지, 어느 각도에서 보면 아름답고 어느 각도에서 보면 어색한지를 냉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초고를 완성한 후 최소 하루, 가능하면 일주일을 두고 다시 보라고 조언합니다. 시간이라는 거리가 객관성을 만들어줍니다.


신화 속에서 피그말리온은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했고, 여신은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작가들에게는 여신이 없습니다. 스스로 신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글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퇴고는 단순히 맞춤법을 고치거나 어색한 문장을 다듬는 작업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작업은 가장 마지막 단계입니다. 진짜 퇴고는 돌에 체온을 입히고, 맥박을 만들고, 호흡을 부여하는 작업입니다.


첫 번째 숨결, 리듬을 만들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존재는 호흡합니다. 들숨과 날숨이 있습니다. 빠르게 숨 쉬다가 천천히 숨 쉬기도 합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장에 호흡이 있어야 합니다.


초고를 다시 읽을 때,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숨이 막히는 부분이 있나요? 너무 긴 문장이 계속되면 독자는 숨이 차서 글을 놓습니다. 반대로 짧은 문장만 계속되면 글이 끊기고 산만해집니다.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을 적절히 섞어야 합니다. 중요한 부분 직전에는 짧은 문장으로 긴장감을 높이고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는 긴 문장으로 여유를 주는 것이죠. 마치 음악처럼, 빠른 부분과 느린 부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두 번째 숨결,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돌로 만든 조각상과 살아있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감각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따뜻함을 느끼고, 향기를 맡고, 소리를 듣고, 맛을 봅니다.


초고는 대부분 추상적입니다. "슬펐다", "행복했다", "아름다웠다" 같은 단어들로 가득합니다. 이것은 조각상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슬펐다" 대신 "목구멍에 뭔가 걸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라고 쓰는 겁니다. "행복했다" 대신 "입꼬리가 계속 저절로 올라갔다."라고 표현합니다. 독자가 그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감각으로 번역하는 작업입니다.


세 번째 숨결, 독자의 호흡을 예측해야 합니다. 조각상이 진짜 사람이 되려면, 혼자 숨 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대화를 하고, 반응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울어야 합니다.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 혼자 쓰고 싶은 말만 늘어놓으면 독자는 외면합니다. 독자가 언제 궁금해할지, 언제 지루해할지, 언제 감동받을지를 예측하며 써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독자는 '그래서 뭐?'라고 물을까?" "이 설명이 너무 길어서 독자가 딴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이 반전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독자가 당황하지는 않을까?"


독자 입장에서 글을 읽으며, 독자가 필요로 하는 순간에 정확히 필요한 정보를 주는 것. 독자가 지루해하기 전에 장면을 전환하는 것. 독자가 충분히 몰입했을 때 클라이맥스를 터트리는 것. 이것이 퇴고의 기술입니다.


네 번째 숨결,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야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각은 돌 속에 이미 있다. 나는 그저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할 뿐이다." 퇴고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덜어내는 것입니다. 특히 애써 쓴 문장을 지우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야 합니다.


한 문단을 읽고 나서 "이 문단이 없어도 전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는가?"라고 질문하는 겁니다. 만약 대답이 "그렇다"라면, 그 문단은 불필요하다고 봐야 합니다. 아무리 잘 쓴 문장이라도 과감히 지워야 하는 거지요.


저도 처음에는 애써 쓴 글을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허나, 뺄 것을 다 빼고 나니 글의 흐름이 훨씬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신화에서 피그말리온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조각을 완성했을 때가 아닙니다. 여신이 생명을 불어넣어 조각상이 눈을 뜨고, 따뜻해지고, 그에게 미소 지으며 말을 걸었을 때입니다.


작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퇴고를 마치고, 글을 다시 읽는데 초고보다 한결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순간. 그 글을 처음 읽는 사람처럼 글에 빠져들어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아, 이제 좀 읽을 만하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더 극적인 순간은 독자의 반응을 받을 때입니다. "이 문장에서 울었어요", "이 부분이 제 이야기 같았어요", "이 글을 읽고 용기를 얻었어요"라는 댓글을 받는 순간, 초보 작가는 진정한 피그말리온이 됩니다. 차가운 글자 덩어리에 생명을 불어넣어 독자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든 창조자가 되는 것이죠.


글을 다듬고 고치는 능력은 배울 수 있습니다. 초고를 잘 쓰는 것은 어렵습니다. 영감과 창의력이 필요하고,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퇴고는 기술입니다. 반복적인 연습과 훈련으로 얼마든지 늘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지금 당신의 서랍에 완성하지 못한 글들이 있나요? 초고만 써놓고 "뭔가 마음에 안 들어"라고 생각하며 방치한 글들이 있나요? 그것들은 아직 돌덩이 상태일 뿐입니다.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조각가의 마음으로 형태를 다듬고, 피그말리온의 사랑으로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죠. 리듬을 만들고, 감각을 깨우고, 독자의 호흡을 예측하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면 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차갑던 글이 따뜻해질 겁니다. 굳어있던 문장이 숨을 쉬기 시작하는 거지요. 그 순간, 우리 모두는 작가가 아니라 창조자가 됩니다. 피그말리온이 조각상을 사랑했듯이, 우리도 우리 글을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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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으로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진정 상대를 위한 마음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 글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퇴고라는 마법으로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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