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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글의 뼈와 살을 해체하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by 글장이


매주 목요일 밤 9시. "이은대 문장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이언트 북 컨설팅] 평생 회원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라이팅 코치 수강생들도 평생 무료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서비스 강좌로 시작한 문장수업이, 이제는 자이언트의 시그니처 수업이 되었습니다.


맨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물어 볼 사람도 없고, 배울 기회도 없고, 그럼에도 기어이 쓰고 싶긴 하고. 독서는 제게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독서에 접근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직 글 쓰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죠. 내용을 이해하는 줄거리 독서가 아니라, 한 줄 한 줄 뜯어먹는 문장 독서를 했던 겁니다.


주어, 서술어, 목적어, 보어, 수식어 등 문장성분을 체크했고요. 사실을 언급하는 부분과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도 따로 분리했습니다. 메시지는 어떤 식으로 장착하며, 그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살폈습니다. 예시와 인용, 사례 등은 어떤 식으로 가져오는가. 한 꼭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흐름을 이어가는가.


책을 이렇게 읽었으니 재미 따위 느꼈을 리 없겠지요. 말 그대로 저한테는 "독서=공부"였던 겁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 식의 독서를 1년 6개월 지속했고요. 출소 후에 막노동을 하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은 적 없습니다. 오직 글을 잘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문법이나 문맥, 구성 따위 별도로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문장 독서를 통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장이 자연스럽고, 또 어떤 문장이 힘이 있는가. 이런 것들도 함께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5년 넘게 "문장수업"을 진행하며 라이브 퇴고 쇼를 펼칠 수 있는 동력도 모두 문장 독서 덕분입니다.


글 공부를 할 때는 해부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문장 하나하나를 분리하고 해체해서 다시 결합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이 문장력 키우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문장 하나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문장 하나가 세상을 움직이기도 합니다. 문장의 힘은 강렬합니다. 어쩌면 문장 공부를 하는 만큼 우리 삶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매주 진행하는 "문장수업"에 혼을 담습니다. 집안에 개인적인 일이 있어도, 피곤하고 힘들어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날에도, 목요일 밤 9시만큼은 칼 같이 지킵니다.


"문장수업"에 참여하다 말다 반복하는 이들을 보면 서운하고 섭섭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렇게 최선을 다하는데, 왜 수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것인가. 한 때는 속상한 마음 때문에 제법 오래 힘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모든 사람 생각이 저와 같을 수는 없겠지요. 저한테 글쓰기가 소중하듯이, 각자 자기만의 소중한 무언가가 있을 겁니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가치에 모두가 마음을 담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저의 이기심입니다.


다만, 단 한 명이 참석하더라도 저는 "문장수업"을 계속하려 합니다. 인공지능 시대는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아니라, 치열하게 글을 써야만 하는 세상입니다. 글쓰기가 곧 생각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생각하는 능력마저 잃으면 뭐가 남겠습니까.


문장을 해체하고 분석하고 다시 결합하는 과정에서 나만의 문장이 재탄생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놓치지 않고 바로 제 글을 씁니다. 문장 공부도 하고, 내 글도 쓰고, 일석이조 효과를 누리는 것이지요.


문장 해부학자가 되면 좋은 점이 또 있습니다. 차분해진다는 점이죠. 하루를 살다 보면, 온갖 잡다한 생각에 감정이 동요되기도 하는데요. 가만히 앉아 책 펼치고 문장 하나하나에 집주하다 보면, 아무리 격한 감정이라도 한 시간 내에 다 가라앉습니다.


세상은 소란스럽고 손바닥 안에서는 셀 수 없을 만큼의 정보가 마구 쏟아집니다. 외부 환경이나 상황이 워낙 급물살로 흐르다 보니, 거기에 몸을 맡긴 채 자기 중심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이 허다한데요. 책 읽고 문장 공부를 하면 흔들리지 않는 인생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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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책 펼쳐 문장을 읽습니다. 하나하나 살피고 분석하면서 공부합니다. 마치 그 책의 저자가 눈앞에 앉아 있는 듯합니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고차원의 토론도 가능하지요.


의사 흉내 좀 내 볼까요. 지금부터 해부를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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