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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번역가다, 마음속 언어를 글자로 옮기는 기술

나의 감정을 독자도 느낄 수 있도록

by 글장이


"마음속에 뭔가 쓰고 싶은 게 있긴 한데, 막상 노트북 앞에 앉으면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비슷한 고민을 상담하는 초보 작가가 많습니다. 심각하게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누구나 같은 경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언어와 글이라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마음은 이미지로 생각하고, 감각으로 느끼고, 직관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글은 단어의 나열입니다. 마음의 풍부함을 한정된 자음과 모음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것은 외국어를 번역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지요.


번역가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의 언어를 글의 언어로 옮기는 번역가. 느낌을 단어로, 이미지를 문장으로, 직관을 이야기로 바꾸는 것이죠. 다행히, 번역가가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직역하지 말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셔서 슬프다"라고 쓰지 말아야 합니다. "장례식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현관에 아버지의 구두가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아버지가 거실에서 내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다. 나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현관에 서서 텅 빈 거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둘째, 핵심 독자에 따른 맥락을 고려해야 합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란 주제로 글을 쓴다고 가정해 봅시다. 20대 독자를 위한 글이라면, "엄마의 카톡, 이모티콘" 등을 언급할 수 있겠지요. 반면, 60대 독자를 위한 글이라면, "엄마가 써 준 손편지, 촛불" 등으로 접근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셋째, 뉘앙스를 살려야 합니다. 같은 "기쁨"이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일 수 있지요.

벅차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기쁨

뿌듯하다: 성취감이 동반된 기쁨

흐뭇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기쁨

짜릿하다: 순간적이고 강렬한 기쁨

후련하다: 걱정이 사라지며 느끼는 기쁨

간단히 적어 봐도 이 정도로 다양합니다.


넷째, 번역할 수 없는 감정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름에 소나기가 내리면서 흙냄새가 풍길 때가 있는데요. 저는 그럴 때마다 묘한 감정에 휩싸입니다. 작가이며 강사인 저는, 아직도 그 감정을 뭐라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은 표현하기 힘들다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방법입니다.


다섯째, 친절하게 안내해 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골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갔더니, 할머니 냄새가 났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칩시다. 독자들은 "할머니 냄새"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럴 때는, "장독대에서 오래 숙성된 된장 냄새, 나무 마루에 밴 묵은 나무 냄새, 그리고 할머니가 쓰시던 동백기름 냄새. 그 냄새들이 섞여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라고 상세히 안내해 주는 것이 좋겠지요.


'번역가'라고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매일 번역하며 살아갑니다. 마음속 감정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며 살아가니까요. 말과 글은 내 마음에 일어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이왕이면 생생하고 정확하게, 상대도 나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도록 드러내는 것이 낫겠지요.


외국 도서를 번역한 책 많이 읽어 보았는데요. 어떤 책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술술 잘 읽히고요. 또 다른 책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차이는, 번역가가 얼마나 "원문에 충실했는가"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감정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장하기 위해 꾸미고 더할 필요도 없고, 숨기고 감추기 위해 빼거나 줄이지도 말아야 합니다. 마음속 감정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작가로서 노력하고 연습해야 할 부분이겠지요.


인간의 감정은 본능이고, 언어는 그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도구입니다.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없다고 하지요. 단지, 어떤 감정인가 유추할 수 있는 정도가 최선일 겁니다.


따라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독자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궁리하고 고민하고 연구하고 생각하는 태도를 갖춰야 마땅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마구 쏟아내는 수준에 그치는 글이라면 일기만로 충분하겠지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도 느끼도록 할 수 있을까. 매 순간 이 점을 고민하는 사람이 작가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현대인의 고독을 소설로 번역합니다. 정호승은 슬픔을 시로 번역합니다. 김훈은 역사를 문장으로 번역합니다. 우리도 매일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의 경험을 글로 번역하고, 관계의 복잡함을 이야기로 번역하고, 인생의 깨달음을 에세이로 번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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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이름을 쓰지 말고.

구체적 순간으로.

감각으로.

이미지로.


10분만 투자하면, 순간을 번역하는 문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완벽하지는 않겠지요. 괜찮습니다.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우리를 번역가로 만들어줄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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