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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 성형이 아니라 재활이다

제기능을 회복시키는 작업

by 글장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여자가 저승에서 신을 만났습니다. 아직 때가 아닌데 신의 실수로 여자를 잘못 불러온 거지요. "미안하다. 소원 있으면 말해라. 내가 너를 다시 환생시켜 주겠다."


여자는 미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었고, 신은 여자를 다른 모습으로 환생시켜 주었습니다. 며칠 후, 여자는 다시 목숨을 잃었습니다. 신 앞에서 그녀는 따졌지요. 오래 살게 해 주겠다더니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고 말이죠. 신은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못 알아봤다."


성형은 모습을 바꾸는 겁니다. 신도 못알아볼 정도로 겉모습을 다르게 변형하는 겁니다. 이에 반해, 재활은 본모습을 그대로 둔 채 기능만 되살리는 작업입니다. 퇴고는 성형이 아니라 재활입니다.


원칙 1 - 먼저 단어 하나만 바꿔봅니다.

문제 있는 문장: "나는 매우 슬픈 기분이 들었다."

삭제하지 마세요. 먼저 단어 하나만 바꿔보는 겁니다.

수정 1: "나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수정 2: "슬픔이 가슴을 짓눌렀다."


원칙 2 - 그래도 안 되면 구조를 바꿔봅니다.

"나는 슬픔을 느꼈다." → "슬픔이 나를 찾아왔다."

주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문장이 살아납니다.


원칙 3 - 마지막 수단으로만 '삭제'합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문장만 삭제합니다. 삭제하기 전에 꼭 물어야 합니다. "이 문장이 전달하려던 의미는 무엇인가?" 그 의미를 다른 방식으로 살릴 수 있다면 삭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술을 드셨다. 많이 드셨다. 그리고 쓰러지셨다."

"아버지는 술을 드셨다. 많이. 그리고 쓰러지셨다."

"많이 드셨다"를 "많이"로 줄였을 뿐인데, 문장이 훨씬 강렬해졌습니다. 재활은 절단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는 작업입니다.


초보 작가들의 경우, 자신이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죄다 처음부터 다시 쓰고 싶다 말하는 경우 많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새로 다 쓰는 것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허나, 느낌대로 생각대로 자유롭게 적은 첫 번째 글을 되살리는 것이 훨씬 나을 수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방법으로 문장을 수정하고 보완하다 보면, 엉망진창으로만 느껴졌던 자신의 초고가 점차 모양새를 갖춰가는 걸 보게 될 겁니다. 처음부터 새로 쓴다고 해서 초고가 마음에 들 리 없습니다. 정성껏 고치고 다듬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고 고치고 다듬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상당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몇 차례 작업하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기술도 늡니다. 글을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게 훨씬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습니다.


글을 어떤 식으로 쓰든, 그 글이 본래 가졌던 의미와 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약해진 근육에 힘을 부여하고, 틀어진 뼈를 제대로 맞추고, 모든 단어와 문장이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듬고 또 다듬으면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재활에 속하는 것이지요.


초보 작가들이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게 낫겠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완성된 초고를 다시 읽으며 꼼꼼하게 수정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답답하고 귀찮고 울화통 터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익숙지 않은 작업을 즐겁고 유쾌하게 하기는 힘든 법이지요. 다만, 연습과 훈련을 반복하여 머리와 손에 퇴고 방법을 익히게 되면, 어떤 글이든 잘 다듬을 수 있다는 자신감 갖게 됩니다. 자기 손을 통해 글이 매끄럽게 다듬어지는 기분 느끼면, 그 때부터는 행복한 마음으로 기꺼이 퇴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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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고는 성형이 아니라 재활입니다. 무조건 다 뜯어 고치려고만 들지 말고, 문장 하나하나 원칙과 룰에 따라 수정하고 보완하는 정성을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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