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내용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있는데, 글만 썼다 하면 엉망이 되는 것 같아요."
많은 초보 작가가 글쓰기를 '대화'라고 착각합니다. 어느 책이나 강연에서 비슷한 말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스스로 잘못 생각하게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상대가 바로 앞에 앉아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당연히 분위기는 전혀 달라집니다. 눈앞에서 맞장구를 치는 사람도 없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없고, 눈을 마주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계속 말을 한다면, 글쓰기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요.
글쓰기는 '대화'라기보다는, '편지쓰기'에 가깝습니다. 명확한 누군가가 정해져 있고, 그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겁니다. 이처럼, 편지쓰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령이 필요한데요. 이것만 잘 적용하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 원칙 : 받는 사람을 특정해야 합니다!
누구에게 쓰는 글인가. 이것만 명확하게 정해도 글의 흐름을 잘 잡을 수 있습니다. 쓸데없이 횡설수설 늘어놓지 않게 됩니다. 받는 사람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질문에 답을 정해야겠지요.
질문 1: 내 글을 읽을 사람은 누구인가?
- 나이는? 직업은? 관심사는?
질문 2: 그들은 이 주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 전혀 모르는가? 조금 아는가? 전문가인가?
질문 3: 그들은 왜 내 글을 읽는가?
- 정보를 얻으려고? 위로받으려고? 재미를 느끼려고?
질문 4: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무엇인가?
- 내가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들은 모를 수 있는 것은?
위 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하다 보면, 실제이든 가상이든 어떤 인물 하나가 머릿속에 그려질 겁니다. 지금부터 그 인물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죠.
두 번째 원칙 : 맥락을 제공해야 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100퍼센트 아는' 상황입니다. 허나, 독자는 하나부터 열까지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읽게 됩니다. 친절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룸메이트와 다투었다." 이렇게만 쓰면, 독자는 앞뒤 맥락을 전혀 이해할 수 없습니다.
"3년을 함께 살던 룸메이트가 결국 집을 나갔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것은 일주일 전, 설거지 문제로 다툰 그날이었다." 대략적인 배경과 상황이라도 안내를 해주어야 독자가 이해하기 수월하겠지요. 글을 쓸 때는 이렇듯 앞뒤 맥락을 제공해야 합니다.
세 번째 원칙 : 명확하게 써야 합니다.
작가는 관광지 안내 가이드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정확하지 않거나 불분명한 표현은 삼가해야겠지요. "그날 그곳에서 그 일이 있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 때문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런 식의 글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겁니다.
"2024년 3월 15일, 강남역 스타벅스에서 전 직장 상사를 우연히 만났다. 그는 나에게 복직을 제안했다. 나는 즉시 대답할 수 없었다. 새 직장에서의 적응, 연봉 차이, 그리고 왜 그만뒀는지를 생각하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독자가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겠지요.
네 번째 원칙 : 질문에 미리 답해야 합니다.
글쓰기는 '대화'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대가 눈앞에서 바로 질문을 하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독자들이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미리 예측하고, 그에 대한 답을 작가가 먼저 언급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제 영화 봤어."
"무슨 영화?"
"쇼생크 탈출."
"재밌어?"
"응, 근데 좀 길어."
상대와 마주앉아 대화할 때는 이런 식으로 진행되겠지요.
"어제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를 봤어. 3시간짜리 영화라 긴가 싶었는데, 몰입해서 봤어. 억울한 누명을 쓴 주인공의 감옥 생활과 인간 내면의 갈등을 다룬 방식이 인상적이었어."
작가 혼자 쓰는 글이지만, 독자가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예상해서 미리 답을 제공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원칙, 시간을 허락해야 합니다.
대화는 실시간으로 이루어집니다. 편지는 내가 쓰는 시간과 상대방이 읽는 시간 사이 공백이 발생합니다. 그 공백을 기꺼이 허락해야 합니다.
초보 작가일수록 빨리 책을 출간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 갖게 마련인데요. 그럼에도, 글을 다 쓰고 나면, 일종의 '묵혀두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나흘 또는 일주일 정도 묵혔다가 다시 읽어 보면서, 마치 남의 글을 읽는 듯 확인해 보면 고치고 다듬을 부분이 눈에 띕니다.
그렇게 시간을 두고 정성을 들인 글이야말로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거겠지요. 글쓰기는 언제나 '빨리 가기 위함'이 아니라 '멈추기 위함'이란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화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대와 직접 마주앉아 소통해야만 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훨씬 효과적일 때도 많고요. 그러나, 글쓰기만큼은 '편지쓰기'여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더 친절하게, 더 자세하게. 모든 상황과 분위기를 독자가 현장에서 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써야 합니다. 나는 잘 아는 내용을 쓰지만, 독자는 모르는 내용을 알기 위해 읽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독자를 위함이고요.
따라서,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메시지를 담아 편지를 전한다는 생각으로 정성 담으면, 어떤 글이라도 읽을 만한 수준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연애편지 한 번 정도는 다들 써 봤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마음 졸였던 순간. 그때 그 마음으로 한 편의 글을 쓰는 겁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