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없지만
음악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만, 오늘은 재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네이버 어학사전을 검색해 보니 이렇게 정의되어 있네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미국의 흑인 음악에 클래식, 행진곡 따위의 요소가 섞여서 발달한 대중음악. 약동적이고 독특한 리듬 감각이 있으며, 즉흥적 연주를 중시한다. - 재즈, 네이버 어학사전
마지막에 언급된 '즉흥적 연주'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글쓰기와 어울리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틀이 없습니다. 반드시 이렇게 써야 한다는 규칙이 없는 것이죠. 물론, 문법은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적기 위해 가장 먼저 가져야 할 태도는 '자유'입니다. 트랙을 벗어난 경험을 트랙 위에 끼워맞추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요.
이 부분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직장 생활 경험을 쓰려는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제 경험보다는 지식과 정보를 먼저 쓰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가족 얘기를 쓰려니 마음이 불편한데, 쓰지 않는 게 낫겠지요?
다 쓰고 나면 퇴고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위 다섯 가지 질문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직 한 줄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에게 저는 한결 같이 답변합니다. 일단은 손 가는대로 한 번 써 보시고, 쓴 글을 보면서 다시 얘기합시다 라고 말이죠.
글쓰기는 재즈와 같다고 했습니다. 어디로 갈지, 어디로 튈지, 어떤 내용으로 흘러갈지, 어떻게 마무리될지...... 쓰지 않고서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작가 자신조차 다음 페이지 내용을 알 수 없다는 거장들의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일정한 틀이나 형식이 없고, 규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면서 저는 왜 '문장수업'이란 것을 하는 걸까요?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구구단을 암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이 되는 문법과 문맥은 꿰고 있어야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하겠지요.
재즈처럼 글을 쓰라고 하면서 왜 수강생의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인가 의문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무조건 고치라는 게 아닙니다.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 때문입니다. 주제가 무엇인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이 부분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해 보면, 해당 작가가 명쾌하게 답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자유롭게 쓴다는 말과 아무 생각 없이 쓴다는 말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적어도 자신이 쓴 글에 대해서는 나름의 주장과 의견이 명확해야 합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자는 말도 아니고, 맞다 틀렸다 점수 매기자는 뜻도 아닙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이런 글을 쓰는 목적와 이유가 뚜렷해야 합니다. 서랍 속에 넣고 평생 보관만 할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세상에 내놓을 글이라면 독자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는 갖춰야 마땅하겠지요.
글을 쓰는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방법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첫째, 초고는 재즈처럼 쓴다. 둘째, 퇴고는 치과의사처럼 한다. 초고를 재즈처럼 쓴다는 말은 자유롭게 마구 쏟아내라는 뜻이지요. 퇴고를 치과의사처럼 한다는 말은 하나하나 살펴 보라는 의미입니다.
치과의사는 어떻습니까? 환자의 치아를 하나하나 섬세하게 살핍니다. 썩은 이는 없는 지, 신경은 괜찮은지, 흔들리는 이는 없는지, 스케일링 상태는 어떠한지, 임플란트 필요성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치료하는 것이 치과의사의 책임입니다.
글을 써 본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위 두 가지 사항을 반대로 실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고를 쓸 때부터 지나칠 정도로 꼼꼼해서 집필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끝까지 완성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도 합니다. 반면, 퇴고를 할 때는 대충 훑어 끝내버립니다. 빨리 계약하고 출간하고 싶다는 조급함이 가득해서 진득하게 앉아 섬세하게 수정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죠.
글 쓰는 데에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왕에 글을 쓰고 책을 낼 거라면 독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 당연한 태도겠지요.
초고를 재즈처럼 쓰라는 말도 초보 작가에게는 어려운 표현이고요. 퇴고를 치과의사처럼 하라는 말도 이해는 되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지요. 어떻게든 글을 쓸 수 있도록 돕고 싶은데, 저 또한 그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아 늘 고민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쓰지 않을 때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지요. 먹고 자고 일하고 쉬면서 일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고뇌와 번민과 트라우마와 심지어는 죄책감마저 느끼곤 합니다. 이렇게 전혀 다른 두 개의 자아가 매일 부딪치며 살아가니 글 쓰는 것이 당연히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요.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입니다. 우리는 작가니까요. 쓰지 않을 때의 평범한 모습도 자신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글을 쓸 때 고뇌하고 좌절하는 것도 지극히 정상이란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에게 이런 두 가지 모습이 존재하는구나! 바라보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면, 아무래도 글을 쓰기가 조금은 수월해질 겁니다.
자존감을 얘기할 때는 자신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여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겸손을 말할 때는 자신을 길가에 핀 풀꽃으로 생각하라 하지요. 작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손에 쥐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보내는 하루하루가 모두 소중하고 특별하다는 생각으로 창가에 비치는 햇살조차 지극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요.
잘 쓰기보다는 정성을 다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하겠습니다.
글 쓰는 데 정답이 있었더라면 이토록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힘들고 어렵게 느끼지 않았을 겁니다. 다만, 그 힘들고 어려운 일의 끝에서 만나는 보람과 희열이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계속 쓰는 것이지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