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일 년 하고도 육 개월 동안 노트북 없이 펜과 종이로 글을 썼습니다. 책상도 없어서 방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몇 시간씩 끄적거려야 했지요. 당시 저의 유일한 소망은 작은 밥상이라도 하나 놓고 글을 쓰는 거였습니다. 이 얘기는 이미 여러차례 한 적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조금 살 만해졌다 싶을 때, 제가 가장 먼저 목돈을 쓴 것은 노트북 구입이었습니다. 당시 출시된 삼성 최신형 노트북이었지요. 집에 들고 와서 얼마나 닦고 만지고 또 닦았는지 말도 못합니다.
키보드의 촉감, 처리 속도, 깨끗한 화면...... 천국에서 글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라면 무슨 글이든 잘 쓸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종일 글만 쓰고 싶었고, 잘 때도 노트북을 머리맡에 놓고 잘 정도였지요.
맥북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최신형 노트북을 구입한 지 석 달쯤 지났을 때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애플'에 대해 별 로망이 없었거든요. 그저 스티브 잡스의 몇 가지 철학과 가치관만 가슴에 품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요. 수강생 중 한 명이 강의장에 맥북을 들고 왔습니다. 저, 그 날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살면서 제가 알고 있었던 노트북과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습니다. 기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냥 맥북이 대단하다는 느낌만으로 동경하게 된 것이지요.
사람이 어찌나 간사한지, 집으로 돌아와 삼성 노트북을 보는데 왜 이리 초라해 보이는 걸까요. 제 수준에서 보면 성능 차이도 없는데, 괜한 욕심만 생겼던 겁니다. 저의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너무나 쉽게 눈이 뒤집힌다는 사실이죠.
결국은 맥북을 구입합니다. 그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삼성, LG, HP, 랩탑까지...... 새 것을 샀다가 중고로 넘기고 또 새 것을 사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치 노트북에 미친 사람처럼요. 오프라인 시절, 강의할 때마다 노트북을 바꿔서 가져갈 정도였습니다. 기가 찰 노릇이지요.
컴퓨터에 대해서 좀 안다는 사람이 저한테 묻더군요. 다양하게 써 보니까 어떠냐고요. 각각의 장단점에 대해 말을 좀 해달라고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그때의 황당한 심정은 표현하기 힘듭니다. 뭘 알아야 답을 하지요. 기껏해야 아래한글이나 인터넷 또는 유튜브 정도만 사용하는데, 무슨 장단점을 알겠습니까.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글을 썼던 시절, 제 가슴에 한이 맺혔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고 글 쓰는 모습을 수도 없이 상상했거든요.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밥을 제대로 못 챙겨먹은 사람이 한이 맺히면 급체나 당뇨 등을 비롯한 성인병에 걸리기 쉽다 합니다. 저도 다를 바 없었지요.
종류별 노트북을 다양하게 써 본 저의 소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딱 한 마디 뿐입니다. 돈 아깝다!
개발자도 아니고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프로게이머도 아닙니다. 저는 글 쓰는 사람입니다. 한글 프로그램 하나만 돌아가면 다른 것은 아무 필요도 없습니다. 성능 좋은 비싼 노트북을 구입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 돈 다 모아서 불우이웃 도왔다면 이렇게 마음이 공허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좋은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지요. 욕망은 본능이니까요.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물질적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걸 가지면 만족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걸 갖고 싶은 욕망만 커질 뿐입니다.
좋은 노트북을 가진 후로 글을 더 많이 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펜과 종이로 꾸역꾸역 썼을 때가 더 치열했습니다. 10년도 넘은 구닥다리 초대형 노트북으로 글을 썼을 때, 그 때가 더 작가다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지고 싶다'는 바람은 망상입니다. 손에 쥐는 순간 기쁨과 만족과 감사가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은 욕망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헛된 욕망이라 불러도 좋으니 실컷 한 번 가져봤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그 심정 충분히 이해는 합니다만, 무리하게 노트북을 많이 구입해 본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자면, 절대로 경험하지 말아야 할 욕구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때를 떠올려 보세요. 언제가 가장 설레고 기분 좋습니까? 시작하기 직전이지요. 이제 영화가 막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숨조차 죽이게 됩니다. 그러다가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 별 것도 없다 싶어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홈쇼핑이나 SNS 광고를 보고 물건 사 본 적 있습니까? 만족스럽던가요? 저는 아닙니다. 주문하고 도착할 때까지 기분 좋다가, 막상 물건 받아 보면 실망할 때가 훨씬 많았습니다.
물질적 욕망은 결코 우리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설령 만족스러운 물건 하나를 갖는다 하더라도, 그 기쁨과 만족은 결코 오래 가지 않습니다. 살면서 이미 충분히 경험했으면서도, 매번 같은 선택과 결정을 하는 어리석음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습관이 하나 생겼거든요. 신형 노트북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내일 사자!'라고 중얼거립니다. 네 글자가 저의 악습을 뿌리뽑았습니다. 내일은 금방 옵니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일이 되고 나면 어제만큼 사고 싶지 않습니다. 또 하루가 더 지나고 나면, 사고 싶은 마음은 훨씬 줄어들고요.
욕심도 습관입니다. 욕망도 습관입니다. 소비도 습관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돈도 꽤 많이 모았거든요. 지인들이 물어 봅니다. 돈을 모을 수 있는 노하우에 대해서 말이죠. 확실한 비법이 있습니다. 돈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은 이것 하나 뿐입니다. 쓰지 않는 것이죠. 이렇게 말하면 현실에 맞지 않는 얘기라고 합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냐고 말이죠. 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쓰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꽁꽁 묶어 쓰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모아 본 적이 없다면, 제 말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쓰지 마세요. 돈 쓰지 마세요.
경기 회복? 경기 순환? 현금 흐름? 사회 이바지? 됐습니다, 됐고요. 쓰지 마세요!
많이 벌어 보기도 했고 쫄딱 망해 보기도 했습니다. 다시 열심히 살아내고 있습니다. 투자고 모르고 부자도 모릅니다. 어렵습니다. 골치 아픕니다. 돈 쓰지 마세요. 그게 돈 모으는 방법이고 부자 되는 비법입니다.
쓸 것 다 쓰면서도 짧은 시간에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광고 많지요? 만약 그런 말에 구미가 당긴다면, 딱 하나만 먼저 하고 그들의 말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짧은 시간에, 간단한 방법으로, 엄청난 돈을 모은 사람" 열 명만 만나 보세요. 그런 다음에 실행에 옮겨도 늦지 않습니다. 주의할 점은, "짧은 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간단한 방법"은 정말로 간단한지, "엄청난 돈"은 정확히 얼마인지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아직, "짧은 시간에, 간단한 방법으로, 엄청난 돈을 모은 사람"을 실제로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온라인 상에는 그런 사람이 넘쳐나는 것 같은데, 왜 실제로 만나기는 이렇게 힘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요. 다행스럽게도 말이죠.
고개를 돌려 집안을 두루 살펴 보세요.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습니다. 더 갖고 싶다는 바람은 망상입니다. 허상입니다. 거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