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그리고 마치는 글
일본 여행 갔을 때, 거리 한가운데에서 폭우를 만난 적 있습니다. 어디 피할 곳도 마땅찮아서 우산 하나 간신히 붙든 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폭삭 젖고 말았지요. 더운 여름이라 옷은 금방 말랐지만, 문제는 운동화였습니다.
아직 여행이 이틀이나 남았는데, 물에 젖은 운동화를 신고 절벅거리며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죠. 어느 쇼핑몰에 들어가 운동화를 새로 샀습니다. 그렇게 급하게 구입한 운동화가 마침 제 발에 딱 맞고 편해서 지금까지 저의 '최애' 운동화가 되었습니다.
운동화를 사면, 제일 먼저 끈을 묶습니다. 맨 아래 구멍에 좌우로 끈을 넣고, 왼 쪽 오른 쪽 교차하면서 하나씩 연결하다가, 맨 마지막에 좌우 끈을 묶어 매듭을 짓습니다. '연결'이란 말만 나오면 글쓰기가 떠오릅니다. 오늘은 '들어가는 글과 마치는 글' 쓰는 법과 '운동화 끈 매는 일'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첫째, 양쪽 끈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왼쪽 구멍과 오른 쪽 구멍을 통과한 끈의 길이도 같아야 하고, 두께도 같아야 합니다. <들어가는 글>과 <마치는 글>도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30대 중반,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책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반대했고, 통장 잔고는 바닥났으며, 앞날은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못 쓸 거라는 사실을요."
이렇게 무겁고 진지하게 시작했다면, 결말도 그에 맞는 무게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책 쓰기 재밌어요! 여러분도 도전해보세요!" 이런 가벼운 결말로 끝나면 어떨까요? 독자는 배신감을 느낍니다. 운동화 끈 한쪽은 두껍고 한쪽은 얇은 것처럼 어색합니다.
둘째, 첫 번째 구멍부터 잘 맞춰 끼워야 합니다. 구멍 하나 빠트리거나 잘못 끼우면, 싹 다 다시 풀어서 처음부터 새로 끈을 묶어야 합니다. 글쓰기도 '처음'이 중요한데요. <들어가는 글>을 쓸 때, 전체 원고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 지 미리 힌트를 제공하면 좋습니다. 독자가 마지막에, '아, 그래서 처음에 그 얘기를 했구나!'라고 맥락을 이해하게 되는 거지요.
"새벽 5시, 알람이 울렸지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하루만 쉬자.' 이 말을 얼마나 반복했을까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는 매일 '오늘만'을 반복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이 문장에 이미 결말의 힌트가 들어 있습니다. '매일 오늘만을 반복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결말은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 저는 '오늘만'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대신 '매일'이라고 말해요. 매일 5시에 일어나고, 매일 30분씩 쓰고,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오늘만'의 반복이 실패를 만들었다면, '매일'의 반복은 성공을 만들 것입니다."
보이시나요? 도입부의 '오늘만'이라는 단어가 결말에서 '매일'로 변화합니다. 운동화 끈의 첫 번째 매듭이 마지막 매듭과 연결되듯, 도입부의 키워드가 결말의 키워드와 연결되는 겁니다. 이것을 '에코 기법(Echo Technique)'이라고 부릅니다. 도입부의 단어나 이미지가 결말에서 메아리치듯 다시 들리는 겁니다. 이 기법을 쓰면 글이 훨씬 완성도 있어 보입니다.
셋째, 중간에서 끈을 계속 꼬아야 합니다. 한 번은 왼 쪽, 또 한 번은 오른 쪽. 이렇게 교차하면서 끈을 묶어야 운동화가 단단하게 고정됩니다. 글을 쓸 때도, 도입부와 결말 사이 '교차점'이 필요합니다.
도입부: "저는 평생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이 없으셨는지, 왜 저를 안아주지 않으셨는지."
본문 전반부: 아버지의 무뚝뚝한 모습들, 서운했던 기억들.
교차점(본문 중반): "아버지의 낡은 수첩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제 학교 행사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어요. 단 한 번도 오신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멀리서 지켜보고 계셨던 겁니다."
본문 후반부: 아버지의 사랑을 뒤늦게 발견하는 이야기들.
결말: "이제 저는 압니다. 사랑은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버지의 침묵 속에도, 무뚝뚝함 속에도 사랑은 있었습니다."
위 글에서, '아버지의 낡은 수첩'이 교차점이 되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였지만, 결말에 가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안다'라고 연결됩니다.
넷째, 마지막엔 반드시 끈이 풀리지 않나 단단히 조이고 확인해야 합니다. 글을 다 쓰고 나면, 속 후련하다는 듯 엉덩이 떼기가 급한 초보 작가 많습니다.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의자에 깊숙이 눌러앉아, 자신이 쓴 글을 점검해야 합니다.
□ 도입부에서 제시한 질문이 결말에서 답해졌는가?
□ 도입부의 키워드가 결말에 다시 등장하는가?
□ 본문 중간에 명확한 전환점이 있는가?
□ 결말이 도입부를 다시 환기시키고 있는가?
□ 마지막 문장이 여운을 남기는가?
이 다섯 가지만 확인해도 글의 완성도가 크게 높아집니다. 운동화 끈이 잘 묶였는지 확인하듯, 글의 연결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이지요.
어렸을 적에는 운동화 끈 묶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도하고 또 시도하면서 결국 자연스러워졌고, 이제는 운동화 끈 매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글도 똑같습니다. 처음에는 "들어가는 글과 마치는 글을 연결"하거나, 한 편의 글 "도입부와 결말을 연결"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겁니다. 허나, 매일 꾸준히 글 쓰고 반복 연습하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시작과 끝을 연결할 수 있게 됩니다.
짧은 글, 일기, SNS 포스팅, 간단 메모 등 무언가를 쓰는 행위를 매일 반복해야 합니다. 초보 작가 입장에서 글쓰기 실력 갖추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 바로 습관 만드는 것이지요. 매일 반복을 이길 자는 없습니다.
일본에서 운동화 구입하고, 호텔 방에서 끈을 묶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운동화 끈 묶는 것과 글쓰기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매일 글을 쓰고, 머릿속에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고 살면, 모든 순간이 글감이란 걸 느끼게 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