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의 무게
말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직업이 작가, 그리고 강사이다 보니 해야 할 말만 골라 하는 걸 좋아하게 된 모양입니다. 글을 쓸 때도 불필요한 말 싹 다 제거합니다. 강의할 때도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말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분위기 띄우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줄 알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침묵으로 일관된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기 힘들어 했습니다.
종일 재잘재잘 쉬지 않고 말을 하니까 입이 아플 지경이었지요.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술도 많이 마실 때니까, 술과 수다가 섞이면 무조건 낭패를 겪기 십상입니다. 제 인생에서 후회할 만한 일은 모조리 술과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수다는 즐겁습니다. 친한 사람들끼리 의미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건 좋은 일이죠. 문제는 모든 대화를 수다처럼 하는 겁니다. 업무 보고를 수다처럼 하고, 중요한 결정을 수다처럼 하고, 진지한 고민을 수다처럼 나눕니다. 그러면 어느 것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수다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떠드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니까요. 하지만 대화는 결과가 중요합니다. 무언가를 전달하고, 이해하고, 결정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말을 아끼는 사람은 이 둘을 구분합니다. 수다 떨 때는 편하게 떠들고, 대화할 때는 핵심만 말합니다. 상황에 맞게 말의 밀도를 조절하는 거죠.
예전의 저는 이런 걸 전혀 몰랐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게 좋은 거라고 착각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알려고 노력합니다. 언제 말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를 말입니다.
말하지 않는 것도 메시지입니다. 때로는 말보다 강력한 메시지죠. 회의에서 누군가 터무니없는 제안을 했을 때, 다들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냅니다.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은데요..."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을까요..."
그런데 한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쳐다봅니다. 표정도 없이 그냥 응시하죠. 그 침묵이 모든 반대 의견보다 강력합니다.
한 번은 제가 실수를 해서 선배가 화가 난 적이 있습니다. 큰 실수를 했거든요. 예전 같았으면 그 선배가 저한테 한참 잔소리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겁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계속 사과했습니다. 선배는 그냥 "알겠어"라고만 했습니다. 말하지 않는 선배가 훨씬 무서웠습니다. 침묵이 메시지였습니다. '이건 심각한 일이야. 변명의 여지가 없어.' 말하지 않고도 전달되는 거지요.
경제학의 기본 원리가 있습니다. 희소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는 거죠.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떠드는 사람의 말은 가치가 낮습니다. 너무 흔하니까요. 반면 평소 말이 없는 사람이 입을 열면 가치가 높습니다. 귀하니까요.
다이아몬드가 비싼 이유는 희소하기 때문입니다. 물이 중요하지만 싸게 느껴지는 이유는 흔하기 때문이고요. 말도 똑같습니다. 말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면 희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꼭 필요할 때만, 중요한 순간에만, 제대로 준비해서 말하는 거지요.
그러면 사람들이 귀 기울입니다. '이 사람이 말을 한다는 건 중요한 거구나.' 자연스럽게 존중이 생깁니다. 말 수가 적은 사람의 말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쉴 새 없이 종알거리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없을 겁니다.
말이 많은 건 생각이 정리 안 됐다는 증거입니다. 머릿속이 복잡하니까 말도 복잡해지는 거지요. 반면 생각이 정리된 사람은 말이 간결합니다. 핵심을 알고 있으니까 핵심만 말하면 되거든요.
저는 글을 쓸 때 이걸 실감합니다. 주제가 명확하지 않으면 글이 길어집니다. 이것저것 다 쓰다 보면 몇천 자가 넘어가죠. 하지만 주제가 명확하면 짧아집니다. 핵심만 쓰면 되니까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니까 계속 떠듭니다. 혹시나 빠뜨릴까 봐 이것저것 다 말하는 겁니다. 말을 아끼는 사람은 생각을 먼저 정리합니다. '내가 지금 전달하고 싶은 핵심이 뭐지?' 이걸 분명히 한 다음 입을 엽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명확합니다. 듣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불필요한 정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말을 아끼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침묵하면 사람들이 '저 사람 무슨 생각하는 거지?'라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는 건 아닐까?'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요. 말을 많이 하면 이런 오해를 피할 수 있습니다. '나 여기 있고, 생각하고 있고, 의견도 있어!'라고 계속 증명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건 불안에서 나온 행동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무시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말을 많게 만듭니다. 진짜 용기는 침묵하는 겁니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내 타이밍에 내 방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불안을 견디고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그런 용기가 있는 사람이 존중받습니다. 남들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지키는 사람이니까요.
말을 아끼는 건 말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말을 살리는 겁니다. 불필요한 말을 버리고 필요한 말만 남기면 그 말이 살아납니다. 무게가 실리고, 힘이 생기고, 영향력이 커집니다. 꽃다발을 생각해 보세요. 꽃이 너무 많으면 어수선합니다. 적당히 여백을 두고 배치해야 각각의 꽃이 돋보입니다.
말도 똑같습니다. 말 사이사이에 침묵이라는 여백을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각각의 말이 의미를 가집니다. 저는 이제 말하기 전에 생각합니다. '이 말이 꼭 필요한가? 지금 해야 하나? 이렇게 표현하는 게 최선인가?'
그렇게 거른 말만 합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사람들이 제 말에 더 귀 기울입니다. 말의 양은 줄었는데 영향력은 커졌습니다. 말을 아끼는 사람의 말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희소성이 있습니다. 진정성이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할수록 가벼워집니다. 말을 아낄수록 무거워집니다. 존중받고 싶다면, 말을 아껴야 합니다. 침묵할 줄 아는 사람. 꼭 필요한 순간에만 입을 여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한마디가 백마디보다 강력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