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했던 생각을 생각해내는 과정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아직 명확하지 않아서, 정리가 안 돼서 글을 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생각을 먼저 완벽하게 정리하고 나서 글을 쓰겠다는 거지요.
이것은 순서가 뒤바뀐 생각입니다. 글쓰기는 정리된 생각을 옮겨 적는 작업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생각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머릿속에 생각이 완성되어 있고, 그것을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고 착각하는 경우 많습니다. 마치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프린터로 출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는 전혀 다릅니다. 머릿속 생각은 명확한 문장이 아니라 희미한 느낌, 단편적인 이미지, 흐릿한 감정들입니다. 그것들을 글로 쓸 때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강연을 준비할 때나 책을 쓸 때, 완벽하게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노트에 개요를 만들고, 핵심 메시지를 정하고, 구조를 짜고, 그런 다음에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분명 생각을 정리했는데 글로 쓰려니 막막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가 정리했다고 생각한 것은 생각의 뼈대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생각은 글을 쓰면서 만들어지는 거였습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 봤습니다.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썼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일단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횡설수설이었습니다. 앞뒤가 안 맞고, 논리도 없고, 그냥 생각의 파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계속 쓰다 보니 점점 생각이 명확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연결고리가 발견되었습니다. 그제야 글쓰기는 복사하기가 아니라 창조하기라는 사실을 알았지요. 머릿속에 있는 걸 옮기는 게 아니라,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글쓰기였습니다. 생각은 글을 쓰기 전에 완성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면서 완성하는 거였습니다.
E.M. 포스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써보기 전까지는." 정확한 표현입니다. 우리는 쓰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쓰는 과정에서 비로소 생각이 명료해집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생각은 본질적으로 언어보다 빠르고 추상적입니다. 머릿속에서는 개념들이 이미지처럼, 느낌처럼 존재합니다. 글을 쓰려면 그것들을 언어로 번역해야 합니다.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만들고, 순서를 정해야 합니다. 이 번역 과정에서 생각은 구체화됩니다. 모호했던 것이 명확해지고, 단편적이었던 것이 연결되고, 숨어 있던 것이 드러납니다.
글을 쓰다 보면 "어, 이건 미처 생각 못 했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쓰다가 갑자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거지요. 계획에는 없었던 내용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이것이 글쓰기의 본질입니다. 쓰는 행위 자체가 사고를 확장시키는 과정인 셈입니다.
저는 강연 준비를 할 때, 주제를 정하고 나서 30분 동안 멈추지 않고 글을 씁니다. 생각나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씁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그 주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됩니다. 단순히 아는 것과 제대로 이해한 수준의 차이를 발견합니다. 미처 몰랐던 통찰이 나옵니다. 어디서 읽었는지도 모르는 지식이 튀어나오고, 무의식 속에 있던 경험이 연결되기도 합니다.
쓰기 시작하면 뇌가 활성화됩니다. 평소에는 접근하지 못했던 기억의 서랍이 열립니다.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저절로 조합됩니다. 손가락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물리적 행위가 생각을 촉발시키는 것이죠. 그래서 '생각하고 쓰기'보다 '쓰면서 생각하기'가 더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학생들이 리포트를 쓸 때도 완벽하게 구상하고 나서 쓰려고 하는 경우 많은데요. 모든 자료를 읽고, 모든 논점을 정리하고, 완벽한 개요를 만들고 나서 쓰기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글쓰기가 단순한 타이핑 작업이 됩니다. 재미도 없고, 새로운 발견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료를 읽으면서 중간중간 글을 쓰는 게 더 좋습니다. 읽고, 쓰고, 다시 읽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이해와 통찰이 일어나는 거지요.
글쓰기를 탐험과도 같습니다. 출발할 때는 대략적인 목적지만 정합니다. 세부 경로는 가면서 정합니다. 가다가 예상치 못한 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계획에 없던 풍경을 만나기도 합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주제만 정하고 출발합니다. 쓰면서 길을 찾습니다. 가다가 더 좋은 방향을 발견하면 방향을 틀어도 됩니다.
저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같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글쓰기는 생각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만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지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쓰다 보니 탐험의 비유가 떠올랐고, 학생들의 리포트 이야기가 나왔고, 제 경험이 자연스럽게 엮였습니다. 쓰기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쓰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발견의 순간이 글쓰기를 흥미롭게 만듭니다. 만약 글쓰기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단순히 옮기는 것뿐이라면 이보다 지루한 일은 없을 겁니다. 글을 쓰면서 새로운 생각을 발견하기 때문에 항상 신선합니다. 글을 쓸 때마다 모험입니다. 어디로 갈지 정확히 모르는 상태로 출발하는 여행이지요.
물론 이렇게 쓰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불확실함을 받아들이는 용기. 처음부터 모든 걸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 많은 초보 작가가 이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해 글쓰기를 미룹니다. 확실해질 때까지, 정리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확실함'은 쓰기 전에는 오지 않습니다. 쓰는 과정에서만 만들어집니다.
생각은 글쓰기의 재료가 아니라 결과물입니다. 물론 글을 쓰기 전에도 생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날것의 재료일 뿐입니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입니다. 글을 쓰는 과정이 바로 그 원석을 다듬는 과정이지요. 쓰면서 불필요한 부분은 깎아내고, 중요한 부분은 부각시키고, 숨어 있던 면은 드러냅니다.
"어제 뭐했습니까?" 제가 강의 시간에 수강생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입니다. 처음에는 무얼 했다 간단히 답을 합니다. 그런데, 계속 인터뷰를 이어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메시지까지 연결되곤 합니다.
이것이 글쓰기의 힘입니다. 아는 것을 이해로 바꾸고, 모호한 것을 명확하게 만들고, 숨은 것을 드러내는 힘이죠. 글쓰기는 단순한 표현 도구가 아니라 사고하는 도구입니다. 더 잘 생각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일기가 좋은 예입니다. 일기를 쓰는 이유가 단순히 기록 때문일까요? 부분적으로는 맞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하루를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일기를 쓰기 전에는 '그냥 바쁜 하루'였는데, 쓰고 나면 의미가 보입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이 중요해집니다.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발견합니다.
저는 10년 넘게 매일 글을 씁니다. 블로그에, 수첩에, 이메일에 씁니다. 10년이 지나도 쓸 때마다 새로운 발견이 있습니다. '이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라고 생각하며 쓰기 시작해도, 쓰다 보면 새로운 각도가 보입니다. 같은 주제를 열 번 써도 열 번 다 다릅니다. 매번 조금씩 다른 생각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생각은 살아있습니다. 계속 변하고, 자라고, 진화합니다. 글쓰기는 그 변화를 포착하는 방법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생각을 글로 남기면,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보여줍니다. 일 년 후 같은 주제로 쓰면 다른 내용이 나올 것입니다. 그 때의 나는 지금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자기 발견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쓰면서 나를 발견합니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글을 쓰면서 알게 됩니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때는 막연했던 것들이 글로 쓰면 또렷해집니다.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글을 쓰는 게 불안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모르는 상태로 시작하는 게 정상입니다. 쓰면서 알아가면 됩니다.
글을 써 보면 압니다. 첫 문장 쓸 때와 마지막 문장 쓸 때의 나는 다릅니다. 그 사이에 생각이 자랐습니다. 발견이 있었습니다. 변화가 있었습니다. 글을 다시 읽으면 신기합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싶습니다. 쓰기 전에는 몰랐던 생각입니다.
생각 정리를 위해 글쓰기를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글쓰기 자체가 생각 정리입니다. 아니, 생각 발견입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면 그 순간이 바로 글을 쓸 때입니다. 글로 쓰면 명확해집니다. 정리되지 않은 내용이 글 쓰면서 정리됩니다. 몰랐던 내용을 쓰면서 발견합니다.
글쓰기는 생각의 출력이 아니라 생각의 탄생입니다. 쓰는 순간, 새로운 생각이 태어납니다. 그러니 생각할 시간을 갖기보다 쓸 시간을 가지는 게 낫습니다. 생각하려고 앉아있지 말고 쓰면서 생각하세요. 손이 움직이면 머리도 움직입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면 생각도 깨어납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이 글쓰기를 통해 구체화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생각들,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느낌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길 기다립니다. 쓰기 시작하면 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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