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신영복 선생이 쓰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면서 다시 살아야겠다 결심했습니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의연해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두 권의 책은 저로 하여금 절망과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두 분과 두 권의 책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강의를 하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고 달라진 저의 경험을 나누려 했지요.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토니 라빈스의 《무한능력》과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두 권을 끼고 살았습니다. 저한테는 경전이나 다름없는 책이죠. 카민 갤로의 《최고의 설득》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타인을 돕는다'는 말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배부른 정치꾼들의 선전용 멘트 정도로만 여겼지요. 실제로 다른 사람을 돕는 인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그럴 정신이 어디 있냐고, 다른 사람 돕는다고 내 인생 뭐가 그리 달라지겠냐고, 삐딱한 생각만 하면서 제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했습니다.
모든 걸 잃고 난 후에야, 다른 사람 돕는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인지 깨달을 수 있었지요. 나탈리 골드버그와 줄리아 카메룬, 바버라 에버 크롬비, 브렌다 유랜드 등 세계적인 글쓰기 동기부여가들의 책을 읽으면서, 글로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소방관의 삶을 읽은 적도 있습니다. 일을 마치고 퇴근한 소방관이 가족과 잠자리에 들면서 어린 아들 팔베게를 해주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저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경찰관의 이야기도 읽었습니다. 아버지도 경찰이었기 때문에 그 삶이 더 와닿았습니다.
우리 작가들이 카페에 올리는 글에는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이야기,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구박 받은 이야기, 형제자매 아옹다옹 다투며 자란 이야기, 할머지가 쪄준 고구마 먹던 이야기......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저의 어린 시절을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 모든 경험들이 나를, 내 삶을, 버티게 해 주었구나.
부부 관계나 육아 관련 글도 많이 읽었습니다. 제 일상과 비교도 하게 되고, 나는 어떤 남편 어떤 아빠로 살고 있는가 성찰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하나도 생각하지 않을 내용인데, 글을 읽는 덕분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죠.
"쓸 게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써 보라."고 권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별 것도 없는 글'에서 저는 매번 감동을 받고 저를 돌아보며 인생을 생각합니다. 안아주고 싶고 토닥거려주고 싶습니다. 잘 살았다고, 잘 견뎠다고 말이지요.
아무것도 아닌 인생은 없습니다. 세상에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대가들도 있지만,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굳이 비교해서 표현하려니 '평범한'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만, '평범하다'는 기준이 대체 무엇일까요? 주말 부부가 열차 대합실에서 일주일 이별을 하는 동안 어린 딸이 아빠의 목에 매달려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트립니다. 이것이 평범일까요? 아침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는데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합니다. 이것이 평범일까요?
하루가, 일상이 대수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관심을 갖고 유심히 살피지 않는 탓입니다. '작은 인생'을 알아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보고 듣고 스치는 모든 것들을 기적이라 단정짓고, 그런 다음에 한 번 찬찬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손톱 자라는 것조차 경이롭습니다.
글을 읽고 배웁니다. 책을 읽고 느낍니다. 참 다행입니다. 글을 읽을 수 있고 책을 품을 수 있어서 말입니다. 종이 위에 활자로 삶을 담아준 모든 작가들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살아온 삶이 무엇이든 고맙습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