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생명력, 하루
아침 6시. 어머니를 모시고 집을 나섰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걷는 어머니가 우산까지 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원래는 차를 빼서 지상에 있는 관리실에 대고 어머니가 탑승하는 거였는데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옆에서 우산을 씌워드리면서, 계단을 내려가 지하 주차장으로 갔습니다. 계단 내려가는 것이 좀 위험하긴 했지만, 손잡이를 잡고 한 계단씩 천천히 내려가니 충분히 갈 만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에서 출발해 경북대학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퍼붓습니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운행했습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연휴가 끝난 첫 출근일이라 도로에 차가 많았습니다. 신천대로에서 조금 정체되었지만, 집에서 병원까지 30분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빗줄기가 약해졌습니다. 차를 임시 정차하고, 얼른 내려 뒷문을 열었습니다. 어머니를 병원 입구에까지 모셔다 놓고, 차를 주차장에다 대고 다시 왔습니다. 아침 6시 30분인데, 병원 대기실에는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먼저 2층 채혈실로 갔습니다. 외래 환자 접수부터 하고, 채혈 비용을 수납한 후 번호표를 뽑아 기다렸습니다.
대기실 의자에 앉을 때, 어머니 입에서는 "으이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차에서 내려 병원 복도를 걸어서 수납을 하고 채혈실 대기 의자에 앉는 데까지 20분 걸렸습니다. 채혈 시작은 7시 30분부터입니다. 40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병원에 자주 와도 어디가 어딘지 도통 모르겠다."
수납을 먼저 하는지, 번호표를 먼저 뽑는지, 기계에는 뭐라고 입력을 해야 하는지...... 저도 당황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원무과에 직원이 출근하기 전까지는 모든 환자가 기계를 이용해 접수하고 번호표를 뽑아야 하는데, 노인들한테는 그것조차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몇 사람이나 제 팔을 붙잡고 이것 좀 도와달라며 부탁을 했습니다. 할머니의 이마에는 힘든 주름살이 잡혔고, 할아버지 얼굴에는 노기와 짜증이 섞였습니다.
12번을 부르는 소리에 어머니는 절뚝거리며 채혈 의자에 앉았습니다. 몇 번이나 본 모습이지만, 어머니 팔에 주사 바늘을 꼽을 때 저는 또 고개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여간해서는 그 모습을 보기가 힘듭니다. 피를 세 통이나 뽑았습니다. 소독 솜으로 지혈하고, 동그란 밴드 하나를 붙였습니다.
1층 엑스레이 촬영실로 이동했습니다.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오늘은 촬영 환자가 적은 모양입니다. 번호표를 뽑았더니 5번입니다. 시계를 보니 8시입니다. 촬영은 8시 30분부터 진행한다고 벽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촬영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저것 봐라. 참 신기하구나."
어머니는 병원 천장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봅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필름이 담긴 상자가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덜커덩거리며 이동합니다. 해당 진료과 담당 의사에게 전달되는 것이지요.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나 신기해합니다.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옷을 갈아입으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탈의실로 들어가셨지요.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웬 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합니다. 제가 막아섰지요. 안에 사람 있다고요. 그런데 이 아주머니, 막무가내입니다. 같이 들어가서 갈아입어도 된다고 우깁니다. 문을 여는 순간 그 안에 있는 어머니 옷 갈아입는 게 다 보이는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문을 막아서고는 아주머니를 노려보았습니다. 계속 혼잣말로 궁시렁거리더니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온 어머니는 촬영실로 들어갔습니다. 젊은 사람도 병원옷을 입으면 초라하게 보입니다. 여든 노인은 엑스레이 촬영복만 입어도 당장 아픈 환자처럼 보였습니다. 십 분쯤 지난 후에 어머니가 나왔습니다. 무슨 사진을 이렇게 많이 찍냐며 피곤한 기색을 보입니다. 두 달 전, 한참 아플 때 휠체어 타고 왔을 때는 이런 불평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확실히 많이 나은 모양입니다.
다시 2층 정형외과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피검사 결과가 나오려면 한 시간 반은 걸린다 하네요. 7시 30분에 채혈했으니까 9시 정도 되어야 합니다. 엑스레이 촬영실에서 오래 기다린 덕분에 정형외과 앞에서는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어머니 이름이 불리고,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피검사 결과, 엑스레이 촬영 결과, 모두 정상이라고 합니다. 아직은 힘이 부족하고 근육이 약해서 걷는 게 불편할 수 있지만, 계속 열심히 운동하고 잘 먹으면 점점 좋아질 거라고 하네요.
의사 만나러 들어갈 때 표정과 나올 때 기색이 전혀 다릅니다. 어머니도 그제야 안심이 되나 봅니다. 외래 약국에 가서 처방전에 기재된 골다공증과 칼슘 약을 구입했습니다. 빗줄기가 많이 약해졌습니다. 우산 없이 걸어도 될 정도였지요. 어머니와 함께 주차장으로 이동해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3개월 후, 11월 15일에 다시 병원에 가야 합니다. 번거롭고 힘겨운 일정이지만 기꺼이 하려고 합니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아무 이상 없다, 이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고기 좀 사드려야겠습니다. 단백질 보충 많이 하고 힘 내시도록 말이죠.
오늘 아침 어머니 모시고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문장이 대단히 훌륭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독자들이 밑줄을 그을 만한 명언이 담긴 것도 아니고요. 그럼에도 저는 이런 글을 소중히 여깁니다. 전부 다 사소한 것들 뿐이지요.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인생과 일상은 대부분 사소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소한 것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면 우리 인생과 일상에도 의미와 가치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삶의 생명력은 일상에 존재합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습관, 보잘 것 없이 여기는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지요. 관심을 갖고 관찰하면 '별 것 없다'는 생각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비가 내리고, 병원에 다녀오고, 어머니 입에서 한숨이 나오고, 기다림이 지루했고, 의사의 말에 안도감을 느끼고, 집으로 돌아오고...... 이런 이야기가 별 것 아니라면, 우리 인생 어떤 것이 별 것일까요?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