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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 땡기는 날

한 맺힌 족발을 먹었는데

by 글장이


칠곡 시장에는 작은 족발집이 하나 있다. 메뉴는 미니족발과 왕족발 두 가지뿐이다. 미니족발은, 콜라겐 듬뿍 담긴 쫄깃한 껍질 위주로 그 양이 적다. 가격은 1만 3천 원이다. 왕족발은 살코기 푸짐하다. 미니족발에 비해 두 배쯤 비싸다.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문득 족발 땡기는 날이 있다. 술 마시던 시절에는 족발 만한 안주가 없었지만, 지금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아서인지 먹고 싶은 날이 그지 잦지 않다.


어제, 족발이 먹고 싶었다. 차를 몰고 시장으로 갔다. 세월이 10년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두 가지 메뉴를 팔고 있었다. 족발 삶는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종일 열 시간 넘는 중노동을 마치고 일당 9만 원을 받아 챙기면 허기가 몰려왔다. 새참도 먹고 점심도 든든히 먹었는데도, 몸 쓰는 일은 배를 금방 꺼지게 한다. 현장에서 인력사무소로 돌아와 소개비 만 원을 떼주고 돌아서면, 바로 옆 시장에서 풍기는 족발 냄새에 발을 떼지 못했다.


살코기 듬뿍 담긴 왕족발, 그 비싼 가격을 지불할 용기는 차마 없었다. 말 그대로 사이즈가 적은 미니족발 한 팩을 떨리는 손으로 사가지고 집에 가져갔다.


한창 크는 중이었던 아들은 그 조그마한 족발팩을 보면서도 만세를 불렀다. 저녁상에 풀어놓으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애써 족발을 외면하셨다. 아내와 나도 서로 눈치만 보면서 아들 앞으로 족발을 밀었다. 덩치가 점점 커지고 있는 아들에게, 그 작은 족발은 한입거리도 되지 못했다.


돈이 없었다. 아파트 관리비, 대출 이자, 최저 생활비, 아들에게 들어가는 돈.... 나 혼자 막노동해서 벌어가지고 다섯 식구 먹고 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멀쩡하게 잘 살고 계시던 부모님 재산 몽땅 거덜냈고, 내가 모았던 돈도 모두 날렸다. 산더미 같은 빚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다. 막노동 일당으로 언제까지 거지꼴로 살아야 할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아렸다.


다른 건 몰라도, 가족 먹고 싶은 음식 정도는 꼭 챙겨주고 싶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돈이 없어서 먹거리조차 사질 못하는 내 신세가 한심하고 초라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식구들 배까지 곪게 만들다니.


허리가 부서지고 몸이 가렵고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라도, 매일 밤 12시까지 쪼그리고 앉아 글을 썼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책 읽고 글 썼다. 글을 쓴다 하여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고, 먼 훗날 뭔가 달라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건 오직 책과 글쓰기 뿐이었기 때문이다. 영원한 건 없다. 분명 달라질 수 있다. 책을 출간하고 강의를 시작하면, 적어도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인생보다는 형편이 나아질 거라 믿었다.


처음으로 원고를 투고했을 때,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계약하자는 얘기가 아니었다.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옆 카페에서 좀 만나자고 했다. 뭐가 됐든 나쁜 얘기는 아닐 듯하여, 없는 돈 털어 버스 타고 서울로 갔다. 그 모든 이야기가, 정말로 내 이야기가 맞는지, 출판사는 여러 차례 내게 물었다. 그런 다음에야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믿기지 않을 이야기. 21세기에 쌀값을 걱정해야 하는 전과자 파산자의 이야기. 출판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진실 여부를 가려야 했을 거다. 그래서 전화로는 계약 얘기를 하지 않고, 일단 만나자고 제안을 했던 거였다.


난생 처음으로 출판 계약을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내려오는 동안,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직은 아무것도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지. 2015년 11월에 계약한 원고는, 이듬 해 2월에 세상에 나왔다. 10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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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판대에 올려져 있는 왕족발과 미니족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왕족발을 한 200팩쯤 사버릴까 싶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아들의 배를 실컷 채워주지 못했던 애비의 한이 기억 나서 순간 울컥 화가 치밀었다.


미니족발 한 팩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식탁 위에 올렸다. 아들은 기숙사에 가 있다. 아버지도 웃었고, 어머니도 웃었다. 미니족발은, 생각보다, 별 맛이, 없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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