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최악의 순간이 필요하다
보일러 온도를 28도에 맞췄다. 이틀 동안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보일러 가동이 멈췄다. 빌라 건물주가 통째로 수리를 마쳤다는 소식을 오전에 들었다. 마침 기온이 뚝 떨어진 즈음이라 방이 꽁꽁 얼어붙었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웅장하게 들린다.
커피 포트에 물을 올렸다. 믹스 커피 두 개를 뜯어 컵에 붓고 물을 따랐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후 불어가며 한 입 마셨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진다. 30분쯤 있으니 방 안에 온기가 돈다.
12월이다. 몸을 사리고, 생각과 말을 조심하고, 그 어떤 돌발 행동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한 달 동안 조신하게. 요조숙녀처럼 고개 푹 숙이고 산다. 나는 12월을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다.
부산역 광장에서 노숙한 적 있다. 여름이었는데도 그 날 따라 으슬했다. 어디 누울 자리 없나 살피는데, 적당한 공간은 대부분 다른 사람이 차지했다. 벤치에 누우면 딱 좋은데, 누구 아이디어인지 벤치마다 팔걸이를 설치해버렸다.
조금 전에 구한 박스를 시멘트 바닥에 깔고, 신문지 몇 장을 몸 위에 덮었다. 인쇄된 신문지에서 약간의 열이 발산돼 한기를 면할 수 있었다. 이미 소주를 두 병이나 마신 뒤라서 금세 곯아 떨어졌다.
새벽 4시쯤 되면 눈이 떠졌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 눈에 띈다. 더 잃을 것도 없는 몸이었지만, 그래도 자존심은 남아 있었는지 출근길 사람들 눈에 띄는 건 죽어도 싫었다. 박스와 신문지를 대충 말아 치우고는, 부산역 안 화장실로 향했다.
대전역 광장은 그나마 괜찮았다. 광장 한 쪽에 줄지은 포장마차 덕분이다. 늦은 밤, 손님이 서서히 줄어들면, 얼굴이 익은 아주머니가 오뎅국물 떠먹으라는 신호를 준다. 밤 추위에 떨다가 마시는 국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노숙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업 실패로 모든 것을 잃고, 채권자들이 자꾸만 집으로 몰려왔다. 내가 집에 있지 말아야 했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집에 두고, 혼자 집에서 나와 부산역, 동대구역, 대전역을 돌아다녔다.
불과 며칠 되지 않는 노숙 생활이었지만, 나는 그때 자존감 바닥을 경험했었다. 멀쩡했던 일상, 하나부터 열까지 그리웠다.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복에 겨운 일이었다.
사무실 안이 후끈 달아오를 때쯤 보일러를 껐다. 이제 꽁꽁 얼었던 방이 제법 녹은 듯하다. 살짝 더울 지경이다. 달라진 삶을 생각하면, 이제 그 무엇도 아쉬울 게 없다. 아쉬울 것도 부족할 것도.
그럼에도 나는 매 순간 뭔가를 불평하고, 화를 내고, 속상해한다. 몸 하나 뉘일 곳이 없어 박스와 신문지를 들고 헤맸던 날들. 그 추운 날 끼니까지 굶어 허기진 배를 오뎅국물로 채우던 날들.
최악으로 치닫는 순간이 삶에 꼭 한 번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평범과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축복인가를 잊지 않을 수 있다. 모든 걸 다 잃었었다. 그리고 지금, 부족함 없이 살고 있다. 불평과 불만이 생길 때마다 입에다 반창고를 붙여야 한다.
사무실 창밖으로 참새와 까치 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 자동차 달리는 소리도, 공사장 기계 돌아가는 소리도,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왁자지껄 웃음소리도 들린다.
여기는 내 공간이다. 갖은 고생 다 해가며 10년 넘게 노력해서 내가 만든 나의 공간이다. 여덟 평짜리 원룸 사무실. 여름엔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보일러를 가동한다.
나는 나의 공간을 사랑한다. 한 번씩 의자에서 일어나 작은 공간을 왔다 갔다 서성이며, 여기가 정말로 내 공간이 맞나 벽을 쓰다듬곤 한다. 처음부터 60평짜리 사무실을 갖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가. 눈물나게 감사한 이 순간을 느끼지 못했을 것 아닌가.
삶은 반드시 좋아진다. 달라진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지. 이루고 싶은 꿈, 너무나 당연하게 그 순간이 지금 여기 와 있다는 믿음. 불을 끄고 사무실을 나선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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