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가치
흔들렸다. 불안했다. 주변 사람들 말에 흔들렸고, 세상 흐름에 휘둘렸고, 온갖 종류의 책과 강연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 중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학과 가치관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곤하고 지쳤다. 무엇 하나 제대로 끝맺은 게 없었다. 각오와 결심 수도 없이 하면서도 결국 또 다른 뭔가가 없나 하고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했었다.
흔들리는 삶의 치명적인 약점은, 자꾸만 누군가의 탓을 하게 된다는 거였다. 사람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환경을 이유로 가족 핑계를 댔다. 열심히 살아가는 듯했지만 남는 게 없었다. 실속 없는 인생. 어느 날 멈춰 서서 내 자신 돌아보면, 여전히 그 자리였다.
아파트 단지에는 샛길이 하나 있다. 맨 처음 이 곳에 와서 살기 시작했을 때, 샛길에는 흙이 두텁게 깔려 있었다. 거기를 오갈 때면 신발에 흙이 들어갈 정도였고, 마치 해변 백사장을 걷는 것처럼 푹신한 느낌이 들었었다.
6년쯤 지난 오늘. 문득 샛길을 걷는데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무는 견고하게 박혔고, 땅은 굳어져 평평했다. 삽으로 땅을 파야 한다면, 고생 꽤나 해야 할 것 같았다.
샛길을 유심히 보고 나니 자연스럽게 그 옆 돌길이 눈에 들어왔다.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경비원들이 처음 이 곳에 돌을 깔던 모습이 선하다. 그 때만 해도 무슨 일을 이렇게 하나 싶을 정도로 엉성하게 보였다.
작업이 끝났다고 하는데도 돌 하나를 밟고 서면 움찔거릴 정도로 불안정하고 위태로왔다. 6년이 지난 지금, 돌은 땅 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 주민들은 그 위를 편안하게 다닌다.
글 쓰고 강의하며 살아간다. 주변에서 무슨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내 인생의 방향을 잡았고, 눈치 보는 일 없으며, 뚝심 있게 한길로 걸어간다.
돈에 현혹되지 않으며, 누가 뒷통수를 쳐도 쓰러지는 일 없다. 사람 미워하는 일에 에너지 쓰지 않고, 사람 좋아하는 일에 목 매달지 않는다.
돌아보니 10년이다. 정확히 9년 9개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글을 썼고 매일 책을 읽었으며 매일 생각을 했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 했던가. 나는 단단해졌다.
무슨 일을 하든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조급하게 결과를 확인하려는 습성을 버렸다. 아쉬울 때도 있지만, 대부분 편안했다.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 속에 정성과 공을 심는다. 세상 가장 위대한 기적은 시간의 권위이다.
사람이 몇 번 오간다고 해서 흙이 단단하게 굳지는 않는다.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이 한 번 두 번 밟고 지나간 탓에 틈 하나 없이 평평한 길이 되었다.
돌 위에 올라 서서 쿵쿵 내려찍는다 해서 견고해지지 않는다. 시간이 함께 해야 한다. 밟고 밟고 또 밟고. 단단해졌나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그저 왔다가 갔다가 한 발씩 눌러주니 땅 속에서 솟아난 돌처럼 단단해진 것이었다.
달라졌는가? 나아졌는가? 좋아졌는가? 고작 한두 달만에 돌아보고 확인하고 들춰보니 단단해질 틈이 있나.
우직하게 나아가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일을 하고 또 하면서. 굳이 들춰보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듯이, 우리가 하는 모든 노력과 정성도 결국은 열매를 맺을 테니.
삶이 단단해진다는 말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좋다는 말에 방방 뜨지 않고, 싫다는 표현에 인상 쓰지 않는다.
둘째, 허둥대지 않는다. 돈 된다는 말에 현혹되어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기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
셋째, 이상과 현실을 구분할 줄 안다. 미래만 쳐다보면서 현실을 회피하는 일 없다. 오늘에 집중하며 내일을 받아들인다.
삶이 견고하게 굳어져 흔들림이 없으면, 비로소 타인을 도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내 인생으로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나는 감히 '완성'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공자님 말씀으로 글을 써 보았다. 꼰대같은 이야기로 포스팅을 채워 보았다. 내 자신을 향한 화살이기도 하다.
폭풍 후에 굳어진 인생.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럽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과거 나처럼 지독한 불행과 시련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돕는 것. 그들에게 시간의 가치를 전해야 한다.
지금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