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바라보기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지나간다. '지나가는' 일을 두고 방방 뛰며 좋아했다가 펑펑 울며 좌절한다. 좋다 나쁘다 평가는 시간을 '모아야'만 내릴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매 순간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분간할 수 없다.
성공이라는 말을 놓고 보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성공이라 부를 것인가. 시작부터 끝까지. 그 모든 시간을 '모아야'만 비로소 성공이라 부를 수 있겠다.
실패도 다르지 않다. 괴롭고 힘든 감정은 순간으로부터 일어나는 게 아니라 시간의 '모음'에서 비롯된다.
하여, 만약 우리가 마주하는 지금이라는 순간에 집중하며 살 수 있다면, 쓸데없는 감정의 낭비를 크게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월 29일 제사. 1월 31일 어머니 생신. 2월 1일 설까지. 큰 행사가 세 번 연달아 있다. 매년 똑같다.
제사 한 번 지내려면 미리 장을 봐야 하고, 음식을 장만해야 하며, 제사 모시고, 상 치워야 한다. 명절에는 손님까지 치른다. 어머니 생신이야 번거로울 것 없지만, 그래도 자식 입장에서 서운하지 않게 챙겨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나름 고민은 하게 된다.
이렇게 쭈욱 펼쳐 놓고 보면, 아! 스트레스 받는다. 그냥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2월 4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트레스는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연초부터다. 한 달 내내 3연타를 막아낼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제, 아버지 모시고 장 보러 다녀왔다. 아내도 함께였다. 재래시장 오랜만이었다. 수산 시장부터 들러 문어, 오징어, 돈배기, 동태전, 가재미 등 제수를 샀다. 상인들마저 싱싱했다. 야채와 과일 코너에도 들렀다. 푸짐하게 장을 봐서 돌아왔다.
오늘 아침 7시부터 두 시간 강의했다. 1월 마지막 차수. 연휴 시작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가들이 함께 해주었다. 힘이 나면 목소리가 커진다. 9시 30분부터 주니어 작가들 모시고 4회차 공저모임 진행했다.
돌아오자 마자 판을 펼쳐 제사 음식 장만했다. 두부, 돈배기 먼저 부쳤다. 동그랑땡, 육전, 야채, 고구마, 연근, 동태전 등 줄줄이 기름을 둘렀다.
오후 5시. 바쁜 하루였다. 많은 일을 했다. 오늘 밤 12시에 제사도 모셔야 한다. 허리가 뻐근하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없다.
장을 볼 때는 장보기에만 집중한다. 강의할 때는 강의에만 몰입한다. 음식을 장만할 때는 음식에만 전념한다.
미리 생각할 것도 없고 당겨 걱정할 일도 없다. 미리 생각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당겨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없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허나, 미래의 가상 스트레스를 미리 당겨 받을 필요, 전혀 없다. 생각 하나 바꾸고 마음의 짐 싹 없앴다.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지금'은 늘 괜찮다. '순간'은 좋고 나쁨이 없다.
'그 순간'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게 의미 있는 순간이라면 근심해도 올 테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면 학수고대해도 오지 않을 터다.
사업 실패, 파산, 구속...... 하나도 후회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업 실패를 두려워했던 시간, 파산을 걱정했던 시간, 구속을 회피하려 했던 시간...... 잃어버린 6년은 아직도 심장을 후벼판다.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도망가려 했으나, 결국은 고스란히 다 겪었다. 난 뭐한 거지?
아깝다. 아쉽다. 미춰버리겠다! 지금 내게 6년 주면 인생 세 번은 바꾸겠다. 옘병하고!
순간을 살아야 한다. 지나간 일 붙잡고 울어봐야 소용없고, 오지도 않은 일 걱정해봐야 쓸데없다. 소용없고 쓸데없는 일로 소중한 인생 낭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 없다.
지금은 글을 쓴다. 글 쓰는 일에만 집중한다. 이따가 제사를 준비할 때는 제사 준비에만 충실한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면 잠에 빠져든다.
장도 잘 봤고, 강의도 잘 했고, 음식도 잘 장만했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면, 인생 모든 순간이 즐거워진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난 명랑핫도그!"
아내와 아들이 소리친다.
음...... 싸움에 집중할 때다.
지금 행복하십시오!